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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직 편집인 칼럼

펜에는 성도 차별도 없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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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을 스케치하고 싶지는 않아?”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어요.” 미켈란젤로의 대답에, 질문을 했던 로마의 귀족 레오 발리오니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 세상 사람의 절반을 그 한마디로 포기하는군.” 어빙 스톤의 소설 <르네상스인 미켈란젤로>의 한 장면이다.

  

80억 현존 인간의 성비는 누가 뭐래도 5:5다. 남아 선호 때문에 부분적 불균형이 생겨도, 여성의 평균 수명이 길어 전체적 균형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비암호화 RNA의 기능이든 섭리의 작용이든, 여성과 남성은 수에서부터 우열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은 인간 자신이다. 동수로 주어진 양성의 역할 배분이 인류 역사였고, 그 양상이 문화였다. 역사와 문화는 정치적 힘에 이끌려 편중된 역할 배분을 당연시했다. 거친 환경에 맞서 생존의 전략을 펼친 결과였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세계는 더 유지될 수 없을 정도로 기울어진 편향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 역사의 진전이었다.

 

현존 인간의 성비는 누가 뭐래도 5:5
자연스런 균형 무너뜨리는 건 인간
지면이 세상의 축소판인 신문은
‘여성의 지분이 절반’ 잊어서는 곤란
 


그러면 모든 면에서 남녀의 비중은 성비만큼 균형을 이루었는가? 어떤 이는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호소하는 이 세기의 한낮에, 우선 손쉽게 지면부터 살펴보자. <미디어오늘>이 작년에 보도한 흥미로운 통계가 있다. 9개 일간지의 필진을 조사했더니 남녀의 비율이 76:24였다. 편차가 가장 큰 중앙일보는 87.6:12.4였다. 여성 비율이 제일 높은 한겨레조차 28.9%로, 30%에 못 미쳤다. 조사 대상으로 삼은 5주 동안의 전체 외부 필자 중 성소수자는 0.1%에 불과했다. 다른 기관에서 조사한 22개 시사 프로그램 중 남녀 비율은 더 큰 격차를 보였다.


대중매체에서 필진의 구성은 개개인이 속한 영역의 일정한 의견이나 이해관계를 반영한다. 국내외 정세를 놓치지 않아야 하며, 진보ㆍ보수ㆍ중도의 입장을 두루 대변해야 하는 언론은 필진의 구성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노동ㆍ인권ㆍ청년과 함께 여성 부문을 따로 거론하는 까닭은 여전히 여성과 남성의 동등성이 확고하게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 성소수자는 물론 중성이나 무성을 주장하는 의견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법조계에 한정해서 보자. 금년 변호사시험 합격자의 여남 비율은 44.45:55.55다.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생 남녀 비율 51.77:48.23과 큰 차이 없이 엇비슷하다. 전체 판사와 검사 중 여성의 비율은 30%이나, 간부급을 제외하면 40%를 웃돈다. 이번 일요일에 치를 2023학년도 법학적성시험 지원자는 여성이 더 많으니, 앞으로 법조계의 판도를 가늠하게 한다.


그렇다면 법률 세계 전반에 관한 토론의 장 역할을 할 여러 매체도 여성 필자의 수를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법률신문>의 경우 취재 기자들의 수에서 여성이 약간 우세하듯, 앞으로 원고 청탁을 위해 켜는 데스크 담당자의 핸드폰 화면에는 여성 이름이 더 자주 뜨게 될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성적 취향 때문에 여성을 모델로 삼지 않았을 수 있지만, 지면이 세상의 축소판인 신문은 최소한 절반이라는 여성의 지분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내가 아는 최 교수의 부인은 형제자매가 3녀 2남이다. 어려서부터 부모가 모든 면에서 딸을 우선시하는 방식으로 가정의 양성 평등을 실천했다. 그 부인이 생애 최초로 남녀차별을 경험한 것은 유학 간 미국에서였다고 고백했다. 성비를 따지는 일이 무조건적 양적 조절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것이 질적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은 매우 높다.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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