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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로] ‘결정할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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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나는 엄마가 되었다. 오랜 시간 원했던 아이였기에 기쁜 마음으로 새 생명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출산 후 내 몸과 마음, 삶과 커리어에 나타난 변화가 낯설었다. 그 지각변동의 사건은 오롯이 내 결정이었음에도 말이다. 


6월 24일, 미 연방 대법원은 15주 이후의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미시시피 주의 법안을 합헌이라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로 임신중지 권리를 헌법상 보장했던 로 대 웨이드 판례는 뒤집혔고 반세기 동안 수차례 재확인되었던 권리가 6명의 다수의견으로 공식 폐기 되었다. 헌법상 보장 받는 권리는 텍스트에 명시되어 있거나, 역사와 전통, 질서 있는 자유의 개념에 내재해야 하는데 임신 중지 권리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가 뒤집힐 수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온 기본권이 축소된 이례적인 사건이다.

미 수정 헌법 제14조에는 적법절차 없이 개인의 생명, 자유, 재산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조항이 비준한 1868년에 3/4의 주에서 임신중지가 범죄였기 때문에 역사와 전통에 뿌리 내린 권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1868년의 사회의 모습은 어땠을까? 노예제도가 없어진 직후 미국은 시민권과 투표권을 점차적으로 부여했지만 사회 구성원의 반을 차지했던 여성은 제외되었다. 동등한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주어지기까지 50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1868년에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가 텍스트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150년 전의 텍스트를 근거로 2022년에 살고 있는 개인의 권리에 대한 결정권이 주정부로 넘어 갔다.

태아의 생명권·여성의 결정권
개인의 믿음·가치관 등 함축
사적 문제에 국가 역할은 의문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줘야


최근에 파트너로 승진한 로스쿨 동기가 어느 매체에서 로펌 여성 파트너 변호사 2000명이 낸 성명서의 링크를 보내 주었다.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이 있었기 때문에 이 직업의 리더십까지 오를 수 있었다며, 재생산권과 여성의 권리를 위해 프로보노 서비스 제공을 약속하는 내용이었다. 이 성명서에는 고 긴즈버그 대법관의 말이 인용되어 있었다. "The decision whether or not to bear a child is central to a woman's life, to her well-being and dignity. It's a decision she must make for herself."(출산에 대한 결정은 여성의 삶, 신체적·사회적 건강, 그리고 존엄성의 중심에 있다. 여성이 주체적으로 내려야 할 결정이다.)

태아의 생명권, 여성의 결정권, 그리고 그 사이에 개입되어 있는 정치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흑백논리로 쉽게 정리되지 않는 이슈다. 개인의 사정, 건강, 믿음, 가치관 그리고 경험에 의해 고유한 상황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많은 요소를 통합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해야 하는 일생의 중대한 문제가 개인의 스토리를 모르는 국가의 역할인지 의문이 든다.

헌법을 해석하는 철학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역사와 전통에 대한 이해만큼 급변하는 현대의 새로운 가치에도 유연한 시각과 포용이 요구된다. 삶을 침투하는 정책과 법을 제정하고 시행하고 심판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필요해 보인다. 이 판결로 가장 고통을 받을 경제적·사회적으로 취약한 처지의 여성들을 위한 사회적 기반 구축이 절실하다. 한 생명을 잉태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자유는 얼마나 고귀한가.

△ 이소은 외국변호사(미국)
가수·외국변호사(미국)·작가. 1998년 앨범 '소녀'로 데뷔했다. 고려대 영어영문학과와 미국 노스웨스턴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2012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코헨 앤 그래서(Cohen & Gresser) 뉴욕 사무소 송무·중재 변호사, 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법원 뉴욕지부 부국장으로 일했다. 현재 문화예술비영리단체 '뮤직 바이 더 글래스(Music by the Glass)'를 운영 중이다. 저서로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