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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리가 아닌 "최선의 선호 원칙"

제7회 성인의 법적 능력에 대한 세계대회 참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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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9일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제7회 성인의 법적능력에 대한 세계대회(7th World Congress on Adult Capacity)가 개최됐다. 2018년 서울에서 한국후견협회, 대법원, 법무부 공동주최로 제5회 대회가 개최될 때까지만도 '세계성년후견대회'라고 불렸지만, 이번 대회부터 변화하는 세계적 추세를 반영해 명칭을 변경했다. 원래라면 2020년 제6회 대회가 개최되었어야 하지만, 갑작스럽게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대유형의 여파로 취소됐다. 그럼에도 올해 개최된 대회는 6회가 아닌 7회 대회로 명명됐다는 점을 밝혀둔다.


직전 대회 개최국인 한국에서는 필자를 포함해 서울가정법원 판사와 조사관, 한국후견협회 소순무 협회장,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 제철웅, 박인환 교수 등 총 14명이 참석했다. 그 중 6명이 구두발표를 했다. 필자는 '한국의 성년후견제도 개혁을 위한 노력'을 주제로 발표했다. 4년만에 전세계의 후견제도, 의사결정지원제도 등 성인의 법적능력과 관련한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동안 변화한 전세계의 동향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몇 가지 필자가 인상깊었던 장면들을 공유한다.

(1) 최선의 이익(복리)이 아닌, 최선의 선호 원칙

발달장애, 정신장애, 치매 등을 이유로 판단능력이 부족한 장애인(이하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의사결정지원의 원칙 관련 국제사회 주류는 최선의 선호(best preferences) 원칙이었다. 종래 최선의 이익(best interest) 원칙, 즉 '복리' 중심에서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이다. 단언컨대, 모든 사람은 객관적으로 최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선호와 희망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원칙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심지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명백한 이익을 포기하기도 한다. 음주, 흡연, 시험기간 벼락치기, 위험을 수반하는 투자 등 그 사례는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어찌보면 최선의 선호를 추구하는 경향은 인간의 자연적 본성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지원 원칙은 인간의 본성과는 반대인 '최선의 이익' 원칙이었다. 후견인은 피후견인의 복리에 부합하는 방법으로 사무를 처리하여야 한다는 우리 민법 제947조 본문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우리 민법 제947조가 계수하기도 한 독일 민법은 최근 대개혁이 있었다. 우리 법과 같이 "최선의 이익"원칙을 천명하던 규정을 "후견인은 피후견인의 선호와 희망에 부합하는 방법으로 사무를 처리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개정하였다고 한다. "복리"를 폐기하고, "최선의 선호" 원칙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이다. 독일의 개정민법은 2023년부터 시행된다고 한다. 우리 민법도 변화하는 패러다임에 맞게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되었다.

(2) Silver collar crimes : 후견인의 부정행위

미국은 상업적인 후견제도가 널리 발전한 대표적인 국가이다. 특히 "은퇴자의 천국"이라고 불리우는 플로리다주(州)는 성년후견제도가 상업화를 넘어서 산업화에 이르렀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로 인해 전문가 후견인들에 의한 범죄가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고, 후견인의 범죄만을 전담하는 조사기관까지 두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합법적인 틀을 가장하여 판단능력이 부족한 고령자의 재산을 노리는 범죄를 "Silver collar crimes"라고 부른다고 한다. 플로리다의 후견인 범죄 전담 조사관은 후견인이 피후견인들을 특정 병원에 입원시키고, 법원 허가를 받아 일괄하여 심폐소생술 거부동의서(DNR동의서)를 작성한 뒤, 병원으로부터 뒷돈을 챙긴 사례를 소개했다. "후견산업"에 대응하는 미국의 정책은 "후견인으로부터 정신적 장애인을 보호"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고 한다. 우리도 후견인의 부정행위가 사회문제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3) 의사결정지원 개념 정립

정신적 장애인의 법적 능력과 관련하여 의사결정지원제도는 새로운 체제(regime)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에 반해 성년후견제도는 의사결정대행제도로서 옛 체제(regime)로 이해되고 있고, 세계 각 국은 의사결정지원제도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한 논의를 발전시키고 있다.

2018년 서울 대회때까지도 "의사결정지원"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도 분명하지 않았던 것에 반해, 이제는 대강의 개념이 정립된 것으로 보였다. 가장 앞장서고 있는 곳은 유럽을 비롯한 서구국가들이다.

서구에서 일응 구축한 의사결정지원에 대한 개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광의(廣義)의 의사결정지원은 쌍무적인 결정과 편무적인 결정으로 나뉜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가 우리 민법이 두고 있는 임의후견(후견계약)과 영·미 등의 지속적 대리제도이다. 후자는 사전결정(Advance Choices)으로 불리는데, 사전지시(Advance Instruction)와 사전지시서(Advance Statemest)로 구분된다. 자신의 선호와 희망에 대한 일응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한다. 최근 서구 학계의 화두는 바로 이 사전결정(Advance Choices)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정립과 제도화 방안이라고 한다.

지난 4년동안 정신적 장애인의 법적 능력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패러다임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복리가 아닌 최선의 선호가 지원의 원칙이 되고, 후견인의 범죄를 예방하고 대응하기 위한 제도개선에 주력하고 있었으며, 우리에게는 아직도 생소한 의사결정지원이라는 개념이 구체화되고 있었다. 대회에 참가하며 필자는 4년간 한국이 겪은 많은 변화와 발전을 자랑하려는 마음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국제사회의 모습을 보며 아직 할 일이 많다는 점을 깨닫고 배워왔다. 2년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개최되는 다음 대회에서는 한국이 국제사회의 패러다임 변화에 발맞추는 구성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배광열 변호사 (사단법인 온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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