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Dr.K의 와인여정

[Dr.K의 와인여정] (4) ‘와심전심’

준비한 와인을 통해 그의 마음을 읽었다

2022_wine.jpg

 

지난 호에 언급했던 며느리 와인(Pichon Lalande)의 바로 맞은 편에는 Pichon Longueville Baron(간단히 Pichon Baron이라고 부른다)이라는 샤또가 있다.Pichon Lalande와 Pichon Baron은 원래 하나의 와이너리였다가 1850년에 둘로 나뉘어졌다. 딸들에게 상속된 와이너리가 Pichon Lalande가 되고, 아들 (Baron Raoul Pichon de Longueville)에게 상속된 와이너리가 Pichon Baron이 되었다.그래서 인지 Pichon Baron은 Pichon Lalande에 비하여 드라이한 맛과 골격이 강한 남성적인 와인이다.

 

나는 전부터 알고 지내던 Pichon Baron의 CEO인 Christian Seely의 초대로 2015년 3월 말에 그 샤또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한 적이 있다.Christian이 필자 이외에도 7명을 초대하여 약간 짓궂지만 재미난 blind tasting dinner를 하였는데, Pichon Baron의 5가지 다른 빈티지 와인들(보통 vertical tasting이라 한다)과 디저트 와인 등 모두 6가지 와인을 검은 보자기로 밀봉하고 마셔보며 알아 맞추기를 한 것이었다. 그 저녁 식사에 참석한 다른 분들은 유럽의 와인 거상들과 평론가 등 Christian의 친구들이었다.

 

나는 프랑스의 여러 와이너리를 20년 가까이 거의 매년 방문하여 시음했고 평소에도 여러 와인을 접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Pichon Baron 역시 웬만한 빈티지는 거의 마셔본 적이 있다. 그래도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는blind tasting은 긴장되기 마련.

 

180048.jpg
Pichon Baron 와인의 에티켓

 

첫 번째 검은 보자기에 싸인 와인이 돌고 함께 와인 잔을 기울였다. 흠~ 아직 young하군... 꽤 좋은 빈티지. 일단 나는 후보 군을 2009, 2005, 2000으로 좁혔다. 2009 라기엔 좀 부드럽고, 2000 이기엔 young하였다. 내가 제일 먼저,“2005!”언젠가 마셔본 적이 있는 느낌이었고 거의 확신이 있었다. Christian, “Bingo!”나의 1승.

 

두 번째 잔이 돌았다. 나는 좀 당황했다. 처음 마셔보는 빈티지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뛰어난 빈티지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 숙성이 되었지만 pre-mature한 느낌과 함께, 지금이 절정인데 이제부터는 오히려 시들어 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별로 뛰어나지 않은 빈티지 치고는 훌륭한 와인이었다. 별로 좋지 않은 해에 좋은 와인을 빚으려고 각고의 노력을 한 내공이 느껴지는 와인이었다. 나의 직접 경험으로는 자신이 없으니, 미천하지만 나의 지식(간접 경험)으로 추론하였다. 곧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런 맛과 향이라면 2001일 것 같은데…” 답을 말했다. “2001!”Christian, “Bingo!”나의 2승. 운이 좋았다. 다른 참석자들이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세 번째 잔이 돌았다. 흠잡을 데 없는 balance와 Pichon Baron 특유의 정갈하며 골격이 뚜렷한 개성이 정확히 표현되는, 그러면서도 균형 잡히고 오랜 여운을 남기며 거의 절정에 도달해 있는 - 나에게도 익숙한 - 와인. 앞으로도 최소 20년 이상은 계속 갈 것 같다. 별 망설임 없이 또다시 내가 제일 먼저 선언.“2000!”Christian, “Bingo!” 3승이었다.

 

네 번째는 1990, 다섯 번째는 1989. 모두 이 샤또 역사상 최고의 빈티지로 자타가 공인하는, 이미 절정에 오른 지 꽤 되는 와인이었고 무엇보다 나에게 익숙한 빈티지였다. 비교적 쉬운 문제. 모두 맞추었다. 나의 5승!

 

마지막 디저트 와인 잔이 돌았다. 모두들 프랑스의 Sauternes지방 (특히 샤또 d’Yquem으로 유명한)이라 생각했을 것 같았다. 그러나 Sauternes 와인이 아니었다. 우선 Sauternes 지방의 포도 주종인 semillon과 sauvignon blanc과는 다른 맛이었다. 다행히 내가 예전에 마셔보았던 헝가리의 토카이(Tokaji)지방의 와인임에 틀림없었다. (Tokaji지방은 헝가리의 북동부지역으로, 주로 Furmint라는 포도 품종으로 귀부와인을 제조한다. Tokaji와인은 Sauternes와인보다 당도와 산도가 높다. 다만 당도가 높기 때문에 강한 산도를 덜 느끼게 될 뿐이다.)답안을 제출했다. "Disznoko of Tokaji, Hungary!"정답이었다. 나의 6승 전승! (좀 잘난 척해서 죄송! 독자 분들의 너그러운 양해를 바랍니다.)

 

다른 손님들이 조금은 놀라고 조금은 실망하는 와중에 나는 단번에 Christian의 숨은 의도를 알아차렸다.


“Christian, 너 드디어 결(재)혼하는구나!”

 
아니나 다를까. 그가 바로 자기의 여친을 입장시키며 정식 소개하는데, 만삭의 젊은 여인이었다. 나는 Christian이 이혼한 지 꽤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새로 좋아하는 여인이 생긴 것은 모르고 있었다. (아직도 구글 등을 검색하면 Christian은 전부인과 결혼 중인 상태로 나온다. Christian은 유럽의 와인 세계에서는 거물에 속한다. Pichon Baron뿐만 아니라 포르투갈 등 유럽 여러 군데 와이너리를 소유 경영하고 있으며 와인 거상이기도 하다.)


나는 그날 Christian이 선정한 와인과, 특히 그 순서 (2005 → 2001 → 2000 → 1990  1989)를 통하여, 그가 - 남들은 은퇴할 나이에 - 인생을 다시 시작해 보려는 의도, 그리하여 과거의 영광 (1990, 1989 빈티지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그 계기는 바로 그 여인이었으리라. 물론 그 과정에는 2005와 2000 빈티지 같은 좋은 과정과 2001 같은 힘든 과정도 있겠지만…나는 그날 그가 준비한 와인을 통하여 그의 인생 역정과 앞으로의 포부를 읽을 수 있었다. 와심전심!


(독자 분들께서 샤또를 방문하여 시음하실 경우, 샤또에서 내어주는 와인은 보통 외부에서 우리가 흔히 마시는 동일한 빈티지의 와인보다 young(덜 숙성)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 이유는 샤또에서의 보관 상태가 거의 완벽하고 운반 과정과 외부 온도변화 등 와인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 와인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5년 -10년 정도 차이는 감안하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