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모두를 위한 법

[모두를 위한 법] 무료 폰트의 공정한 이용

2022_everylaw_hwang.jpg

 

저작권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법이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측면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할 필요성이 강조되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일방이 저작권의 침해를 주장하면, 흔히 상대방은 순응하여 합의금이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그 이용행위가 공정한 것이었는지에 관해 나아가 다투지 않는다.

 
인터넷에서는 무료로 배포된 폰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런 폰트를 사용한 콘텐츠를 온라인에 게시하였다가 저작권을 침해하였다는 통지를 받는 사람이 많다. 침해 주장의 근거는 이용허락의 범위다. 폰트 사용은 개인적 용도인 경우에만 무료이고, 업무용이나 PDF, 이미지, 영상 자막 등 용도로 사용하려면 비용을 내야 하는데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폰트 저작권의 보호에 대한 대중의 의식 수준이 높아져 최근의 사례를 찾기 어렵게 되자, 일부 업체는 오래전에 게시됐던 자료까지 찾아 저작권의 침해를 주장하고 있다. 이로 인해 폰트 이용으로부터 얻은 이익이 없는 학생이나 비영리 활동가들까지 심리적, 재정적 고초를 겪는다. 당초 폰트가 무료 배포되었고 저작권자가 주장하는 이용허락 조건이 이용자에게 제대로 고지되지 않은 상황에도, 쟁송 비용을 우려하여 어쩔 수 없이 합의 요구에 응하기도 한다. 권리보호의 측면만이 강조되는 경우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공익적 교육 프로그램 홍보 목적
홍보지는 1쪽짜리 분량에 불과
시장에 미치는 영향 미미하면
폰트 사용 공정한 이용에 해당

최근 서울남부지법은 이러한 부당한 관행에 제동을 걸고, 컴퓨터프로그램저작물인 폰트의 공정이용에 관한 기준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판결을 했다. 피고 비영리법인은 2015년 공익사업을 진행하면서, 2013년경 원고 폰트 업체가 개발한 무료 폰트로 일부 문구를 작성한 홍보지를 온라인 홈페이지에 게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법원은 (i) 홍보지 제작은 아동들의 건강하고 올바른 식습관 향상 및 영양 증진과 가정의 건강한 식문화 형성이라는 공익적 목적을 갖고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홍보하기 위한 것으로 위 교육프로그램 활동은 비영리적·비상업적으로 이루어진 점, (ii) 이 사건 서체는 홍보지의 제목, 행사 일정, 참가 대상, 참가 신청 방법 부분에 사용되었으나, 홍보지는 1쪽 짜리 분량에 불과한 점, (iii) 홍보대상은 ‘일반 대중’이 아니라 위 교육프로그램의 대상자로 한정된다고 보이고, 피고 법인이 홍보지를 여러 차례 제작한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홍보지의 내용상 게시기간 또한 한정적일 수밖에 없어 홍보지를 제작·게시한 행위로 인해 서체프로그램의 현재 시장 또는 가치나 잠재적인 시장 또는 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거나 미미하다는 점을 종합하여, 피고의 폰트 사용이 공정한 이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프로그램 개발자의 권리가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함은 마땅하다. 하지만 무료 배포된 프로그램이 비영리적·비상업적 활동과정에 제한적으로만 이용된 경우에도 엄격한 권리보호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이는 지식재산의 공중 유통과 이를 통한 산업의 발전을 동시에 추구하는 법률의 목적에 반한다. 법무법인 태평양과 동천NPO법센터가 이끌어낸 이 판결은 공정 이용 판단의 요소에 관한 세밀한 검토를 통해 저작권법의 두 가지 근본이념 사이의 균형을 찾은 선도적 사례로, 국내 많은 비영리 주체들을 남소(濫訴)로 인한 어려움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긍정적 변화가 기대된다.

 

 

황인형 변호사 (재단법인 동천)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