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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신(新)과 함께

[법의 신(新)과 함께] 독립하여 편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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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억울했으면 그랬겠느냐.”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사건 포털 기사에 달린 대세 댓글 중 그나마 덜 과격한 내용이다. 사건의 충격에 뒤지지 않는 댓글의 충격이다. 댓글이 여론의 척도는 아니지만, 변호사를 향한 지독한 불신으로 가득 찬 댓글들은 이 사건에 대하여 변호사업계 안팎의 괴리가 얼마나 큰지 보여주기에는 충분한 것 같다.

 
그 괴리에 대해 말하려면 몇 년 전의 ‘임세원 사건’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종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흉기를 숨기고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의 공격을 받고 숨진 사건이다. 희생자와 가해자와의 관계, 가해자가 가졌던 분노의 원인 등에서 두 사안은 다르지만, 전문직(또는 그 직원들)이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하던 중 분별없는 분노 범죄에 무고하게 희생되었다는 점은 같다. 하지만 세간의 반응은 크게 달랐다. 임세원 사건에서는 의료계 밖 사람들도 진료실의 안전이 위협받는 데 분노하며 의료진 공격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함께 목소리를 높인 반면, 변호사 사무실의 안전을 확보하는데 필요한 제도를 개선하고 그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에 대한 처벌 강화를 법제화하겠다는 대한변호사협회의 목소리는 별 다른 관심과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처벌 강화가 범죄 예방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 외에도(죽을 것을 각오하고 덤벼드는 사람에게 처벌이 무슨 소용인가) 변호사의 안전이 위협받는 게 일반 시민과는 무슨 상관이냐는 태도가 전제되어 있는 것 같다. 의료진의 안전이 위협받으면 의료진뿐만 아니라 환자의 안전도 동시에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인식과는 대조적이다.

 

불신 가득 찬 ‘방화사건’ 댓글에서
변호사에 대한 인식의 괴리 실감
안전 확보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
‘업무의 본질’ 설득이 전제 돼야

 
이런 온도차의 이유로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변호사 업무의 본질에 대한 법조계 안팎의 이해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언제나 환자 편인 의료진과 달리 변호사는 대립하는 당사자 사이에서 처음부터 어떤 한편에 선다. 옳고 그르고를 따져서 편드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은 어떤 편에 서는 것 자체가 변호사 업무의 시작이다. 갈등의 한가운데에 설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변호사의 편듦은 일방적인 지지가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누구 편을 드는 게 그쪽이 옳다고 판단했거나 그쪽을 편드는 게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지만, 변호사의 편듦은 그런 편듦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변호사는 당사자…의 위임 … 위촉 등에 의하여 소송에 관한 행위 및 행정처분의 청구에 관한 대리행위와 일반 법률사무를 행함을 그 직무로 (하)”지만, 동시에 “변호사는 공공성을 지닌 법률전문직으로서 독립하여 자유롭게 그 직무를 행”하기 때문이다(변호사법 제3조, 제2조).

 

희생자 추모하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가해자를 동정하는 댓글은 ‘독립하여’는 생략하고 ‘편든다’는 것만 생각하는 것 같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흉악범이 변호인을 선임했다는 뉴스가 나면 그 변호인 사무실이 항의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 되고 정신적 압박을 이기지 못한 변호인이 사임하는 일이 반복하여 발생하는 것도 이번 사건에 대한 댓글 사태와 본질은 같다. ‘독립하여 편들기’를 이해해 주지 않는 것이다. 그동안 변호사들이 ‘독립하여’ 편들지 못한 점도 분명히 있고 이는 변호사업계 뿐 아니라 법조계 전체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성하고 성찰한 부분이지만, 우리 사회가 변호사의 독립한 편듦을 그저 일반적인 편듦의 수준으로 오해하고 있는 현실 인식을 바꾸지 않고서는 변호사 사회의 안전 확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어려울 것이다. 방화사건 이후 후속 대책에서 변호사 업무의 본질을 시민들에게 설득시키는 일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돈이 많든 적든, 권력이 있는 자든 없는 자든 상관하지 않고, 흉악범이나 사악한 자라 할지라도 사건을 맡으면 법 제도 테두리 내에서 그편을 성실히 옹호하는 게 변호사의 임무임을, 변호사가 각자 독립하여 편을 잘 들 때 전체적인 공익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음을 말이다. (억울하게 희생되신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정혜진 변호사(경기중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