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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신과 함께

[법의 신과 함께] 교대역 정신건강의학과는 항상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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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이 찾아왔다. 일시적으로 기분이 가라앉은 것이리라 생각했는데 증상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친구인 변호사에게 고민을 토로했더니 그는 나에게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 볼 것을 권했다. 상담이라도 받아보라고,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허용되는 공간에서 감정을 토설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라 했다. 특별한 해결책이 나온다면 더 좋겠지만, 본인은 그냥 상담을 받는 것만으로도 많이 개선되었다고 했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추천받은 병원에 전화를 걸었는데, 초진 예약을 하려면 꽤 기다려야 한단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본 주변 병원도 마찬가지였다.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교대역의 정신건강의학과는 항상 붐빈다고, 초진은 한참 기다려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교대역의 대로를 따라 자리 잡고 있는 많은 정신건강의학과, 신경정신과에 다니는 사람은 누구일까. 근처 법무법인과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는 내 지인, 동료, 선후배는 아닐까. 나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주변에도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 보는 직업
몇 달 전부터 이유 없는 우울증

그동안 마음의 상흔 적지 않아
10년간 누적된 증상은 아닌지…

 

하는 수 없이 몇 주 뒤의 날짜로 집 근처에 있는 심리상담 센터에 예약을 잡았다. 그리고 심리상담에 가서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해 보았다. 아마 물어볼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우울감, 기분부전증의 원인은 무엇인지, 언제부터 그런 것 같은지. 글쎄.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까. 나도 명확한 원인을 알지 못한다. 좋은 회사에서 좋은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좋아하는 업무를 하고 있고, 나와 함께 일해서 도움이 되었다, 좋았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양가 부모님도 건강하시고, 집안에 특별히 우환이랄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우울감을 느낀다는 건 어찌 보면 배부른 소리가 아닐까. 하지만 머리로 하는 생각과는 달리 마음은 다른 말을 했다. 조금 지친 것 같다고.

 
변호사가 된 지도 어느덧 10년차가 되었다. 늘 내 눈앞에 주어지는 업무와 과제에 집중한다는 생각, 몰입해서 성과를 낸다는 생각으로 업무에 임했다. 매 순간이 새로운 도전이었고, 힘들어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 변호사라는 타이틀 덕분에 직급과 연차에 비해 회사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많이 맡을 수 있었고, 탁월한 경영진을 가까이 보좌하며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의미 있는 시간들인 동시에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몇천억원이 오가는 프로젝트 일정이 어긋날 때는 스트레스로 심장이 쫄깃해졌다. 일전 폭염이 이어지는 8월에 진행한 유체동산 경매 목록에 채무자의 에어컨과 각종 집기가 모두 올라와있는 것을 보고 자괴감에 휩싸이기도 했었다. C/S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기록해놓은 폭언, 성희롱 자료들을 보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쾌감이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업무 현장에서 입은 마음의 상흔들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동안 몸의 건강은 돌보면서도, 마음의 건강이 괜찮은지 차분히 돌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마도 내 마음은 10년간 누적해서 받은 타격에 대해 나에게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내밀한 삶을 들여다봐야 하는 자, 때로는 삶이 파괴되는 장면을, 사업이 무너지는 현장을 때로는 상상하며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는 직업, 때로는 마주보며 겪어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자가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인일진대 마음이 항상 평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그래서 열심히, 잘 살고 있는 많은 법조인들도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긴장되는 마음을 안고 첫 상담에 임하려 한다.

 

 

김화령 변호사 (서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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