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법신논단

비극 속 자기결정, 자기책임

179641.jpg

 

179641_0.jpg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인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예전에 시험을 위해 이름과 작품명을 무조건 외웠는데, 이제는 이름조차 가물거리니, 세월의 흐름에 따른 기억력의 한계를 인정한다는 고백이 비극으로 와 닿는 듯 하다. TV에서 ‘세계사 지식 향연’ 책을 쓴(책은 절판되어 볼 수가 없었다) 송동훈 작가의 강연을 본 적이 있다. 송 작가는 고대 그리스의 비극이 아테네 시민들에게 민주주의의 가치를 가르치는 학교의 역할을 하였으며,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시기 런던의 많은 극장에서 귀족과 평민들이 함께 비극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민주주의를 학습하게 되었다고 하였는데, 상당히 공감을 하면서 보았던 기억이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3대 비극 작가의 작품이 원형극장에서 공연되던 시기는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꽃피던 시기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몰락하고, 그 이후 이천 년의 시간을 건너 뛰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비극들인 오셀로, 리어왕, 햄릿, 멕베스가 나오기까지 인류의 역사에서는 비극도, 민주주의도 보이지 않게 된다.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셰익스피어의 등장으로 인해 런던의 극장에서 비극은 다시 꽃을 피우게 된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시기는 엘리자베스 1세 치하에서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국가로 가던 시기이며, 동시에 의회 민주주의가 태동하던 시기였다. 비극은 민주주의의 태동에 따른 시대적 요청이었던 것이다.


충격 준 대구법률사무소 방화
‘자기결정, 타인책임’에서 비롯
자기결정에 만 익 숙 하고
자기책임에는 무지하다면
민주와 법치사회 될 수 없어


비극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오이디푸스는 이렇게 말한다. “태어나서는 안 될 사람에게서 태어나, 결혼해서는 안 될 사람과 결혼하여, 죽여서는 안 될 사람을 죽였다.” 오이디푸스의 이 비극적 행위는 누가 결정한 것인가?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지금 우리가 이천 오백 년 전 아테네의 극장에서 오이디푸스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오이디푸스는 신탁을 피하고자 하였지만, 자신의 행위들이 신탁을 이루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오이디푸스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의 황금 브로치로 자신의 두 눈을 찌름으로써 스스로 책임을 졌다. 비극 오이디푸스는 ‘자기결정, 자기책임’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자기결정권은 이성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의 자기의 운명에 대한 결정, 선택을 존중하되 그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부담함을 전제로 한다”고 하였다. 자기결정에는 자기책임이 따르며, 자기책임을 전제하지 않으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자기결정도 이루어질 수 없다. 최근 법조계에 큰 충격을 준 대구 법률사무소 방화사건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자기결정, 타인책임’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회구성원들이 ‘자기결정’에만 익숙하고 ‘자기책임’에는 무지하다면 민주와 법치의 사회가 될 수 없다. ‘자기결정, 자기책임’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며, 법치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자기결정, 자기책임’ 교육의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아무래도 고대 그리스에서 비극이 공연되었던 원형극장들이 많이 만들어져야 할 때인 것 같다.


이상철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

 

미국변호사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