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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오탈제'는 폐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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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쯤 전 사법시험 체제의 극성기는 '고시 광풍'이라는 사회문제로 특징지워졌거니와, 오늘날 법학전문대학원-변호사시험 체제의 극성기는 소위 '오탈자'(五脫者)의 누적이라는 사회문제로 특징지워지고 있다.

 

'오탈제'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구구하지만, 그 찬반의 주장은 "붙기도 어려운 시험을 다섯 번밖에 못 보는 사람들이 불쌍하지도 않느냐", "붙기도 쉬운 시험을 다섯 번이나 떨어진 사람들이 뭐가 불쌍하냐"라는 한 마디로 각각 요약된다. 그러나 이 평행선상을 달리는 두 주장은 유감스럽게도 모두 핀트에서 벗어난 것이다. '오탈자' 응시제한은 -그것이 어느덧 '사회문제'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시사하듯이- 공공복리의 측면에서 그 당부를 판단해야 한다.

  

변호사시험법 제7조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의 본질은 헌법판단의 탈을 쓴 정책판단이다(정형근, '변호사시험법상 응시기간 및 응시 횟수 제한의 위헌성 여부', 대한변협신문, 제827호). 놀라운 사실은, 예의 정책논리가 놀랄 정도로 단세포적일 뿐더러 공상에 입각한 견강부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첫째, 해당 결정의 핵심은 '응시횟수를 제한하기만 하면 더 이상 고시낭인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라는 단순논리이다. 그러나 사시 자체가 폐지된 지 어언 5년이나 지났는데도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모임' 따위가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저것이 얼마나 나이브한 생각인지를 웅변해 주고 있으며, 이에 반하여 'LEET 낭인' 따위가 없는 까닭은 법학적성시험에 '오탈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둘째, 시험을 다섯 번씩이나 보면 그 사이에 교육효과가 사라져 버려서 곤란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억측은 사시 9수생 출신 검찰총장, 고시낭인 출신 사시 수석합격자 등이 엄존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논박되고도 남는다. 셋째, 심지어 응시자 대비 합격률의 지속적 감소를 막기 위해서라도 '오탈제'가 존치되어야 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오탈자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응시자 대비 합격률이 -법무부가 소위 입학정원 대비 합격률을 고수함에 따라- 지속적으로 감소되어 온 것은 공지의 사실인바, 그런데도 저런 핑계를 대는 것은 파렴치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헌재 결정이유의 행간에는 '오탈제'의 제창자들이 쉬쉬하는 불편한 사실이 한 가지 더 숨어 있다. 그것은, 그들이 겉으로는 '변시 낭인'들을 위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이들 소수만 희생시키면 나머지 다수가 행복해진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족히 전체의 10%나 되는 인원은 무시해도 좋을 만큼 적은 수도 아닐뿐더러, 따지고 보면 '오탈제' 덕분에 나머지 다수가 딱히 더 행복해지는 것도 없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오탈제'는 오탈자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불행하게 만든다. 어째서 그러한가.

 

언필칭 '로스쿨의 도입 취지'를 돌이켜보자. 그것이 '교육을 통한 법조인의 양성'이라고들 하지만, 그것과 상반되는 사법시험 체제의 본질은 과연 무엇이었나. '장자 잡편 제26편 외물'(莊子 雜篇, 第26篇 外物)에 나오는 비유를 빌리자면, '사람이 걷기 위해서는 발 디딜 만큼의 땅만 있으면 된다는 이유로, 발을 재어 나머지 땅을 파 황천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법시험 체제의 본질이었다.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시험만 잘 보면 될 뿐만 아니라 그러기 위해 다른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을 외면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폐단이 법학전문대학원 체제에서도 거의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행유여력, 즉이학문(行有餘力, 則以學文)이니, 변시 공부를 하고 남는 힘이 있으면 교과서를 읽고 기초법학에도 관심을 가지라"라는 속 편한 말은, 그런 공부가 법률가의 엄연한 본분임에도 불구하고, 빈말로라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이렇게 학생들이 수험에만 골몰하는 이유가 합격률이 낮아서일 것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도 그럴 것이, 수험생이라면 누구라도 '남들은 다 떨어져도 나만은 언젠가는 붙는다'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그러한 '근자감'이 있더라도, '오탈자'가 버젓이 발생하고 있는 이상, 합격하거나 학업을 포기하기 전까지는 법전원 졸업생은 말할 것도 없고 재학생 중 그 누구도 '오탈'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는 너무나 합리적인 공포이다. 합격률의 고하를 불문하고, '오탈제'가 없다면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오탈제'가 있는 한 살아남는 것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사회적 폐해는 한낱 이론적 가능성이 아니라 기정사실이다. 법전원은 그저 응시자격과 학벌을 얻기 위해 다니는 곳에 가깝게 되었다. 법전원생들 중 병역 미필 자원이 급감했고, 이로 인해 공익법무관이라는 염가의 노동력에 의존해 온 법률구조 사업이 휘청이고 있으며 사정이 마찬가지인 국가소송·행정소송 지휘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흔히들 그저 너스레로 '법학의 위기'라는 것을 운위하지만 법학전문도서관 자료실에 가 보면 그 흰소리의 진정한 의미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바, 사법시험 시절에도 법학도서관 자료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정신 나간 그러나 꼭 필요한 학생들은 극히 드물기야 했지만 이제는 그런 미친 짓을 하는 학생들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물론 이 모든 문제가 오직 '오탈제' 때문만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문제들이 명약관화해진 시점이 하필 '오탈자' 문제가 현실화되면서부터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요컨대, '오탈제'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유익은 불분명하고 미미한 반면, '오탈제'의 사회적 해악은 중대하고 명백하다. 로스쿨의 도입취지 때문에 '오탈제'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탈제' 때문에 로스쿨의 도입취지가 몰각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로스쿨의 도입취지'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한, 결론은 자명하다.

 

 

임대윤 변호사(대한법률구조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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