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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누가 재판을 개판으로 만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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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피고인이 "이게 재판이야? 개판이지"라고 했는데, 판례를 통해 비슷한 일이 벌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와 무고 혐의로 징역 1년이 구형된 피고인에게 1심 재판장이 "징역 1년에 처한다"는 주문을 낭독한 후에 상소기간 등을 고지하던 중에 피고인이 "재판이 개판이야, 재판이 뭐 이 따위야" 등의 말과 욕설을 하면서 난동을 부리자 교도관이 구치감으로 끌고 나갔다. 그런데 재판장은 피고인을 다시 법정으로 나오게 한 후에 "선고가 끝나지 않았다. 법정에서 나타난 사정을 종합하여 선고형을 정정한다"며 징역 3년을 선고한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징역 2년으로 감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재판장이 주문을 낭독하여 외부적으로 표시된 이상 아직 선고가 종료된 것은 아니지만 재판서에 기재된 주문을 잘못 낭독하는 등 실수가 있거나 판결내용에 잘못이 발견된 것과 같이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허용된다"면서 "1심 재판장이 선고절차 중 피고인의 행동을 양형에 반영한다는 이유로 이미 낭독한 형의 3배에 해당하는 징역 3년으로 변경한 것은 위법하다"고 하였다. 1심 재판장은 다시 법정에 나온 피고인의 불만을 들어주거나 차분히 훈계만 할 수는 없었을까. 감치는 몰라도 홧김에 징역 2년 추가로 그야말로 재판이 개판이 되고 말았다.

최근 변호사협회 임원, 로스쿨 교수들과 모인 자리에서 우연히 자신이 재판에서 당한 사건들을 털어놓으면서 분개한 적이 있다. 어느 분은 재판장 중에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기도 하여 만일 정식 후보가 되면 1인 시위라도 할 것이라는 각오를 보이기도 했다.

변호사들은 사건을 통해 당한 황당한 추억이 대부분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피고인은 미국의 어느 퍼블릭 골프장에서 캐디 없이 골프를 하다가 마침 앞 팀의 재미교포인 피해자의 머리에 맞게 하여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가 되었다. 피해자의 진술을 부동의하였는데 이후 바뀐 재판장이 변호인에게 전화를 하여 "피해자의 증언을 꼭 들어야 하느냐, 유죄가 되면 소송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며 위협적으로 나왔다. 변호인은 피해자의 진술이 과장된 부분이 많고 보통 1년에 1~2회씩 귀국하기 때문에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양해를 구했다. 증인신문에 관심이 없던 재판장은 구류 30일을 선고하여 피고인을 법정구속하였다. 나중에 판결문에는 구류 29일로 고쳐졌다. 또 여성 직장인인 피고인이 지하주차장에서 지상으로 저속 운전하던 중 어린이를 충격하여 2주 상해를 입히고 도주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재판장이 공판기일에 피고인에게 부인한다며 화를 내고 곧바로 구속을 시켜버렸다. 보석청구를 하였더니 뜻밖에 보석허가를 하였으나 다음 공판기일에 재판장은 피고인의 진의를 빨리 확인하겠다며 변호인의 퇴정까지 요구하였다.

법정에서 재판장은 그야말로 왕이다. 재판이 개판이 된다면 도대체 누구 책임인가. 선입견에 빠져 경청하는 자세도 없이 피고인을 마구 짓밟는 재판장이라면 하루빨리 물러나야 하지 않을까.


이창현 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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