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서초포럼

모리타니안(The Mauritanian)

179004.jpg

영화 '모리타니안'은 아프리카 모리타니 공화국 사람인 모하메두 오울드 슬라히의 이야기이며, 9·11 테러와 관련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변호사 낸시 홀랜드는 누구나 꺼리는 슬라히의 변호를 맡게 된다. 슬라히는 어느 날 9·11 테러의 핵심 용의자로 임의동행되어 재판은커녕 기소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6년 간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 군 검찰관 카우치는 슬라히 사건의 기소책임을 맡게 되고, 슬라히를 법정에 세우기 위한 노력을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정부는 카우치에게 조차 제대로 된 정보들을 공개하지 않는다. 변호사 낸시는 내용 대부분이 삭제된 사건 파일을 받게 되자 법원에 파일 원본 공개를 신청하여 다시 사건 파일을 제공받게 되고, 파일에서 슬라히가 9·11 테러와 관련하여 자신의 죄를 자백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낸시는 결국 슬라히의 자백이 고문에 의한 것임을 밝히게 되고, 카우치는 증거가 없음을 확인하고 사임을 한다. 슬라히는 낸시의 도움으로 승소하지만 바로 석방되지 못하고 7년 간 더 구금되어 있다가 14년 만인 2016년 10월 비로소 자유를 얻게 된다.


영화는 무겁고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인간의 존엄, 자유와 인권 그리고 정의라는 일상에서 잊어버리고 있던 단어들을 기억나게 한다. 우리 사회에서 불법 감금이나 고문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모리타니안은 어쩌면 우리와는 동떨어진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모리타니안을 보면서 몇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수사와 재판이 오래 진행되거나, 수사기관의 캐비넷 속에 몇 년씩 잠자던 기록이 갑자기 깨어나 수사와 재판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수사와 재판이 오래 지속되면 신체의 구금이 없더라도 정신이 구금되고, 심신이 지친 당사자는 관타나모 수용소에 14년 간 수감된 슬라히가 되어 가지 않을까? 공동체와 개인의 문제도 생각해 본다. 슬라히는 공동체의 안전 앞에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철저히 묵살되었다. 공동체의 안전 앞에 법치는 거추장스러운 장식물에 불과하였다. 2021년 12월 미국 상원 법사위원회의 관타나모 수용소 관련 청문회에 미국 행정부에서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것과 관련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슬라히는 "법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당신이 자유 세계의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느냐?"고 답했다고 한다. 자기 합리화의 논리와 그에 맞춘 공동체의 선(善)을 내세워 너무나 쉽게 법치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사회에서 새겨들어야 할 말이 아닐까? 슬라히는 결과적으로 9·11 테러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지는 않았다. 9·11 테러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나(슬라히)는 아닌 것이다(someone but not anyone). 대형사건이나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여 아무나를 누군가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무나를 누군가로 만들기 위해 형사사건에서 엄격한 증명을 완화된 증명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속 상황이 우리의 현실은 아니라 하더라도 법률가로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영화이다. 어쩌면 모리타니안은 존 롤스의 두꺼운 '정의론'을 다시 펼치게 할지도 모른다.


이상철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

리걸에듀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