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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검찰개혁 관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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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형법을 배우면서 생각보다 훨씬 많은 행위들이 범죄에 해당함을 알고 놀랐다. 추상적으로 적어 놓은 형법의 구성요건들과 각종 벌칙 규정들은 허공에 쏴대는 산탄총처럼 넓은 화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소란스러운 술자리 한 번이면,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범죄가 여러 건 성립될 수 있다. 욕설 몇 마디에 모욕죄, 부끄러운 기억을 끄집어내 떠들면 명예훼손죄, 바닥에 접시라도 내던지면 폭행죄,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면 협박죄, 주인이 나가라는데 버티면 퇴거불응죄 등등.


실무를 익히고 다루면서 이런 생각은 점점 더 강해졌다. 실수로 누락된 행정문서를 실질에 맞게 나중에 작성하는 것도 허위공문서작성죄가 될 수 있고, 불필요한 항목의 예산을 더 긴요한 곳에 쓰는 것도 업무상 횡령죄가 될 수 있었다. 진짜로 나쁜 행위와 그렇지 않은 행위가 법적으로는 잘 구분되지 않고 양형 요소일 뿐이었다. 중요한 건 수사의 여부와 강도이니, 걸리지 않고 찍히지 않는 게 중요했다. 상식과 윤리에 따라 살면 전과자가 될 걱정은 없을 거라는 생각은 순진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의문을 제기하면 경험 많은 선배들은 "그런 건 입건이 안 되겠지", "그런 건 기소를 안 하겠지"라고 답했다. 그런 답변 자체가 입건재량과 기소재량이 중요함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이런 재량 속에서 때로는 사소한 잘못이 과장되기도 하고 중대한 범죄가 축소되기도 했다.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모든 건에 전력투구를 할 수는 없으니 어찌 보면 과다수사와 과소수사는 불가피한 동전의 양면이기도 했을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그 재량을 합리적인 통제와 감시 아래 두는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형사법 전문가는 아니지만, 수사기관의 재량에 대한 통제와 합리적인 정보공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개별법에 산재한 무분별한 벌칙 규정은 과감히 축소할 것. 수사 인력과 자원의 사건별 배분이 적절히 통제될 것. 수사의 진척상황에 관한 정보를 피해자와도 공유할 것. 수사기관 어느 하나에 힘이 집중되지 않도록 적절한 상호견제를 확보할 것. 그래서 나쁜 범죄를 철저히 수사하되, 입건-수사-기소에 걸쳐 수사기관의 재량권 행사는 다수의 감시와 견제 하에 둘 것.

그런데 최근 몇 년간의 '개혁'은 기대하던 것과는 달리 수사 과정을 어떻게 합리화할지보다 기관 간의 권한 다툼에 집중되었다. 이미 작년에 시행된 수사권 조정 이후 현장의 피해자들과 변호사들은 지연되고 부실한 수사로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그에 대한 대책도 미비한 상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이 개혁의 기치가 되었다. 그런데 막상 수사권 박탈로 발생하는 범죄수사의 공백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 있지도 않은 K-FBI를 운운하는 등 설명이 흐릿하다.

개혁론자든 반대론자든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그 개혁이 "피의자와 피해자의 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가 논쟁의 중심이요 대안모색의 지침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동안 이어질 '검수완박' 논란 속에서 누가 그나마 국민을 생각하는지, 적어도 누가 국민의 권익에 더 무관심한지를 두 눈 똑바로 뜨고 살펴보려고 한다.


천경훈 교수 (서울대 로스쿨)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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