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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과 '나쁜놈들의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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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검사로 살아온 지 이제 17년째에 이르렀다. 신림동에서 고시 공부를 함께 하다 나란히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을 같이 다닌 아내와 임관 직전에 결혼하여 이제는 고등학생인 아들 하나를 두고 가정을 꾸려 온 시간과도 비슷하다.

 

지난 시절을 돌이켜 보면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늘 정신없이 바쁘게 보냈다. 초임검사 시절 사랑하는 아들놈이 태어나는 날에도 상사에게 "마누라가 애를 낳지 네가 애를 낳냐"는 소리를 들으며 아내 옆을 지키지 못했고, 그 이후로도 2년마다 임지를 옮기다보니 주말부부 생활도 오래했으며, 그나마 주말부부가 아니던 4년 정도의 시간 중에도 일이 많다는 핑계로 늘 새벽에 집에 들어가거나 며칠씩 못 들어간 적도 많았다. 아들놈이 10살 때는 그 당시 소속 부장검사였던 지금의 검사장님에게 "아빠를 집에 보내 달라"며 면담 신청을 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고, 아내는 내게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이라도 해야겠다"며 가정에 소홀했던 나에 대한 서운함을 종종 드러냈었다.

 
그렇게 17년 가까운 세월을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내 수사기록을 집어던지는 상사로부터 "너 같은 것도 검사냐" 소리를 들어가며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었던 적도 있었고,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능력 부족을 실감하여 좌절한 적도, 내 잘못과 과오로 내 주변 또는 내 사건관계인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준 자격미달의 시절도 있었다. 지금에 와서 고백하지만, 나는 대한민국 검사로서 여러모로 한없이 부족한 사람임을 느낀다.

 
이렇게 시시때때로 밀려드는 자괴감과 죄책감 속에서도 나를 지탱해 준 것은 남들 보기에 아주 거창한 사명감은 아니었다. 영화 '공공의적2'에서, 정준호에게 얻어맞아 넘어지면서도 "그만 자빠져 있어라"고 말하는 정준호에게 설경구가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나 "검사가, 대한민국 검사가 공공의 적을 앞에 두고 누워 있을 수가 없거든"이라고 받아치는 대사처럼 폼 나는 좌우명도 아니었다. 그저 내 결정에 다른 사람의 인생이 걸려 있다는 그 엄청난 무게감이 주는 부담감 때문이기도 했고, 혹 사건처리가 늦어지거나 잘못된 결정으로 "능력 없다"는 말을 듣기 싫은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기도 했었다. 그것은 곧 내 일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자, 대한민국에 검사가 필요한 작은 이유이기도 했다.

 
세상에 제대로 알려진 적도 없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검찰 내부에는 검사들의 묵묵한 노력으로 경찰이 간과한 무엇인가를 더 밝혀내어 피해자의 권리를 구제하거나, 무고하게 범죄자로 몰린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 준 사례들이 수없이 많다. 이 중에서 내가 경험한 몇 가지 실제 사건들을 소개한다.

 
검사가 경찰에 수사지휘를 할 수 있던 6년 전 일이다. 당직 근무 중에 5살된 여자아이가 빵을 먹다 갑자기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별다른 사건이 아니라고 보고 부모의 뜻에 따라 부검은 하지 않겠다고 건의가 올라왔다. 그러나 부모들이 "빵을 먹던 아이가 갑자기 쓰러져 응급조치를 했지만 사망했다"고 하면서 화장 절차를 서두르고, 사체에서 다수의 멍자국과 상처가 보이는데 부모는 "애가 잘 넘어지곤 하는데 허약체질이라 멍과 상처가 잘 난다"고 발뺌을 했다. 무언가 석연치 않아 직접 사체를 검시하러 나가 보니, 멍의 부위나 상처가 부모들의 변명과 너무 달랐다. 즉시 현장에서 부검지휘를 하고 '변사자 주변인물 및 진료의사, 119 구급대원 상대 조사, 피해자 진료기록 확보, 경찰이 수거하지 아니한 피해자의 토사물을 즉시 수거하여 감정토록 지휘'했다. 부검 및 감정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직접 사인은 외부 충격에 의한 복부 내 장기 손상(간, 췌장 등)이었고, 그 외 광범위한 찰과상과 멍자국은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일선 경찰서가 아닌 대구시경에서 수사를 진행하여 아버지가 친딸의 복부를 여러 차례 걷어차 사망케 한 사실이 밝혀졌고, 아버지를 구속 기소하기에 이르렀다.

 
검사는 범죄자를 찾아 처벌하는 일도 하지만, 때론 억울한 피의자의 누명을 벗겨 주기도 한다. 성폭력으로 어떤 남성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이 있어 검토해 보니 아무리 봐도 고소인과 피의자는 내연 관계로 보였다. 단서들을 종합해서 추적해 보니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이 두 사람은 내연 관계에 있다가 고소인이 이 남성을 사기로 고소했는데, 그의 소재를 알 수 없어 체포영장이 발부된 후 기소중지가 된 상태에서 경찰이 더 이상 손을 쓰지 않았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고소인은 경찰서 다른 팀을 찾아가 이 남성을 강간으로 다시 고소했다. 경찰에서는 이미 그 경찰서에 사기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음에도 이를 성폭력 전담 검사에게 알리지 않고 강간으로 체포영장을 다시 신청하여 발부받았다. 경찰은 이 강간 체포영장을 가지고 피의자를 체포한 다음 강간으로만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이었다. 관련 기록들을 모두 검토해 보니 고소인도 이미 사기 사건 고소 당시에 피의자와 내연 관계라고 진술했었을 뿐만 아니라, 강간 체포영장 청구 당시에 성폭력 전담 검사가 보완수사지휘를 하였음에도 별도로 보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예전 사기 사건도 검토하지 않은 채 피의자 체포에만 주력하여 잡아온 것이었다. 보완수사를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강간 혐의에 대해 입증도 없는 상황인데 피의자를 먼저 구속하려고 한 것이다. 결국 이 피의자는 검사의 노력 덕분에 강간범의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사기를 쳐서 서민들의 피 같은 돈을 빼먹는 사람들도 끈질기게 수사하지 않으면 빠져나가기 일쑤다. 자신의 지인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1억 3,000만원 정도를 빌려 주었다가 떼인 고소인이 있었다. 경찰은 두 사람 사이에 계속적인 금전 거래가 있었고 일부 갚았으며, 고소인도 피의자가 도박자금으로 쓸 것을 알고 있었다며 '혐의없음' 의견으로 송치했다. 피의자가 일부 갚으면 사기가 되기 어렵다는 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피의자에게 다른 사건들이 있는지 찾아봤다. 그랬더니 비슷한 무렵에도 비슷한 사기 범행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고, 두 사람 사이의 거래내역을 분석해 보니 변제 금액이 극히 소액에 불과했다. 결국 보완수사를 지휘했더니 피의자가 이미 다른 곳에도 2억원가량의 채무 누적 상태에서 여기저기 추가로 돈을 빌리는 것이 어려워지자 고소인으로부터 돈을 빌려 돌려막기를 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결국 사기죄로 처벌을 받았는데 고소인에게 돈을 갚고 합의를 하고서야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었다.

 
'검수완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왜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구구절절 꺼내드는지 의아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거악을 척결하는 대한민국 검사'라는, 선뜻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이상향의 검사를 논하기보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 속에게 검사가 정말로 왜 필요한지 조금 더 생생하게 국민들께 알려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매일 2,000명에 가까운 검사들이, 싸잡아서 '검새, 떡검, 섹검'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자신과 가정을 희생해가며 묵묵하게 이런 일들을 하고 있다. 외부에 잘 공개되진 않지만, 검사들의 이런 노력들이 사건관계인의 마음을 움직여 검사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검사들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 이럴진대 검사의 수사권이 정말 불필요하다고 단정할 수 있을 것인가.

 
검사에게 수사권이 없다면 앞서 소개한 사건들은 물론 대부분의 검사들이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는 크던 작던 의미 있는 일들을 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수사지휘권이 사라진 지금, 보완수사요구권만으로는 이런 일들은 더 어려워졌다. 보완수사요구에 실질적인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수사권을 박탈해서 이런 일들을 아예 못하게 막는 것이 국민들에게 어떤 이익이 된다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사실 일반 국민들은 검사들이란 피상적으로 막강한 권한인 수사권을 갖고 범죄자를 찾아 내 처벌하는 사람 정도로 알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나아가 영화나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검사들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자신의 권력을 남용해서 출세를 노리거나 또는 금전적 이익을 얻기 위해 사건을 말아먹고, 정의감에 넘치는 경찰이나 부하 검사의 수사를 가로막으면서, 외부 사람들과 결탁하여 접대나 받고 다니는 더럽고 추악한 권력자'로 인식하고 있을 법도 하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논란에 대해 검사들이 나서서 거듭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 일부 국민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실상은 '검찰개혁이 이젠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검사는 아무도 없다. 검사들도 아직 많은 부분 개혁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고, 또 외부에서 지적하는 문제들에 대해 여전히 국민들의 시각에서는 부족한 단계이지만 끊임없이 고민하고 개선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돌이켜, 검사들에 제기했던 우려들을 외면하고 누가봐도 급하게 이루어진 개혁 법률 시행의 결과 지난 1년 동안 일어난 일은 어떠한가. 검찰과 일부 학계 등에서 우려한 대로 실무에서는 수사권조정으로 인한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경찰의 고소·고발장 접수 거부 논란, 엄청난 수사 지연(어느 선배의 말을 빌자면 육도윤회의 시스템이다), 실체 진실이 밝혀지지 않아 범죄가 암장되는 사례 등 일일이 언급하지 않아도 변호사, 사건관계인들까지 이제 피부로 느낄 정도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이와 같은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이 국민들의 불편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보완책을 강구해서 어렵게 이룬 개혁의 성과가 제대로 나타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상식적일 텐데, 뜬금없이 검찰권의 남용으로부터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서 '검수완박'을 완성해야 한다는 논리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의도의 진정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심지어 검찰의 6대범죄 수사권마저 박탈하면 '경찰이 그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6대범죄 수사가 증발해 버리므로 수사의 총량을 줄일 수 있는 것'이라는 평가도 있는데, 범죄 자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수사를 하지 않는 방법으로 범죄를 방치해서 (외부로 드러난) 범죄를 줄이자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넌센스'다.

 
검찰권이 혹시라도 남용되는 사례가 있다면 그것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은 일반 국민들이 아니라 일부 6대 범죄를 저질렀거나, 저질렀다고 의심받는 사람들이라는 말인데, 굳이 이른바 '조희팔' 사건이나 최근의 '라임 자산운용' 사건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대형 범죄로 인해 국민들이 입는 피해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의문이 든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수사권을 토대로 한 검사들의 노력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국민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었던 가능성을 차단하면서까지 수사권을 박탈해야 하는 당위성이 과연 더 큰 것인가. 검찰권 남용이 진짜 문제되는 사건이 실제 있다면 그것은 검찰 내부, 외부 위원회, 언론과 시민사회단체, 법원이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한민국 검찰이 그동안 완벽하게 잘 해 왔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한 점도 분명 있다. 그렇다고 하여 그 잘못했던 부분에 대한 통찰과 외과 수술을 넘어서 2,000명 가까운 수사 전문가들을 안락사 시키는 것이 유일한 해답인지 묻고 싶다.

 
더구나 정치권이나 일부 시민단체에서 지적하고 있는 그 잘못한 부분이 대부분의 일반 국민들과 관계되어 있는 사건들이었는가? 아니다. 특정 정파, 권력이나 부(富)를 가진 특정 계층과 관련되어 있어 유독 국민적인 관심을 끌었던 사건들일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이 전체 검찰이 처리하는 사건 중에 얼마나 될 것인지 난 정말 모르겠다. 이에 반해 검찰의 수사권이 완전히 박탈된다면, 앞에서 소개한 사례들 같은 수많은 사건들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일반 국민들에게 돌아갈 피해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클 것이다.

  

국민들께도 정말로 그 진심을 여쭙고 싶다. 다수의 국민들께서 '검수완박'을 원한다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범죄 피해를 당했을 때 검사가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바라십니까? 아니면 검사가 경찰 수사기록만 보고 결정하길 바라십니까?" 또는 "피의자가 되었을 때 검사에게 다시 한번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기를 바라십니까? 아니면 경찰 의견대로 하거나 경찰에 보완수사 요구해 놓고 이제 내 사건 아니라고 나몰라라 하기를 바라십니까?" 장담컨대 거의 모든 국민들께서 자신의 사건에서는 검사의 검토와 판단을 원하시리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내 경험을 바탕으로 '검수완박'이 앞으로 일반 국민들의 삶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지 꼭 말하고 싶었다. 비록 '조직이기주의, 집단반발, 선출 권력에 대한 오만한 반기, 권력욕에 사로잡혀 그 권력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위선자들, 반성할 줄 모르는 적폐 세력'이라 손가락질 받더라도 말해야 할 것은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급한 개혁 추진으로 인한 부작용의 피해가 누구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인지, 또 이 개혁 법안으로 수혜를 입는 사람들은 누구인지를 많은 국민들이 제대로 알 수 있기를 바란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이 해체된 이후 여의도 증권가의 주가조작 사범들이 쾌재를 부르고 있다는 소문이 제발 뜬소문이었으면 좋겠다.

 
설경구가 '공공의적2'에서 부장검사에게 사표를 던지면서 말했듯 '나쁜놈'을 잡지 못하는 검사가 존재 의의가 있는가. '검수완박'이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를 예고하는 서막이 아니기를, 내가 검사장에게 "나쁜 놈들 잡지 못하는 검찰 그만두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날이 오지 않기를 기도한다.

 

 

백승주 부장검사(대구지검 공판제1부)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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