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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전라도가 뭐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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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나오는 것에 대한 판사들의 호불호는 갈리는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심사숙고해서 내린 판결이 여론의 주목을 받는 것을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 판결이 뉴스로 다뤄지면 좋은 이야기든 아니든 어떤 '반응'이 오는데, 간접적으로나마 일반 시민들의 법감정에 따른 평가를 받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된다.


그런데 내가 쓴 판결에 관한 기사의 '댓글 반응'을 살피다가 광주에서 일하는 판사로서 가슴 아픈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판결 그 자체에 대한 반대 의견이나 심지어 욕설을 섞은 비난까지도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판사님 저는 욕을 하지 않았습니다" 류의 댓글놀이도 재미있게 보고 있다). 그렇지만 광주법원의 판결 기사에만 유독 많이 달리는 지역 비하 악성 댓글을 보고 있는 것은 정말이지 괴로운 일이다.

성범죄 관련 기사에는 '역시나 그 동네', '전라도에서 성폭행이 죄냐' 등의 댓글이 꾸준히 달린다. 똑같은 유형의 형사 판결을 소개한 부산·대구법원 쪽 기사에는 범죄를 지역 특성과 연결시키는 댓글을 거의 찾기 어려운 것과 대조적이다. 알고 보면 다른 지역 출신인 피고인이 렌터카를 빌려 타고 광주·전남의 빈집을 턴 사안을 다룬 판결을 썼는데, 단지 광주법원에서 선고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전라도 사람은 노력해서 돈 버는 것을 싫어한다"라는 등의 지역비하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대개는 호남에 대한 차별의식을 갖고 있는 일부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감정 배출 통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아무 잘못 없는 대다수의 우리 지역민과 호남 출신 출향민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이런 종류의 혐오 표현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호남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되고, 우리 지역에서 자라나는 미래세대에까지 악영향을 줄까봐 걱정이다.

'전라도 사람' 정도의 규모의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모욕은 형사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 악플러들도 그걸 잘 아는지 심한 혐오 표현을 전혀 겁먹지 않고 한다. 현재로선 양식 있는 다수 시민들에 의한 자정 작용으로 공론장에서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한 가지 과도기적인 대안으로는 법조 기자님들이 판결 기사를 쓸 때 지역 비하 댓글러들을 불러 모을 것 같은 제목의 기사면 지역 법원명을 빼고 써주시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차기현 판사 (광주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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