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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 조정의 협상·조정 관점의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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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31일 환경부 장관의 발표로 설치된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조정위원회)'가 6개월간 기업과 피해자 양측의 의견을 수렴해 지난 3월 28일 피해 구제 조정안을 내놨다. 20여개 피해자단체들과 피해분담금을 납부한 18개 기업 중 9개 기업이 조정을 통한 사태 해결을 위하여 조정에 참여하였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의 공론화 11년 만에 조정안이 마련된 것인데, 향후 3개월 내에 조정대상자 절반 이상의 피해자가 동의하면 조정이 성립한다. 조정위원장인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은 피해자 규모가 크고 기업 간 입장도 크며 장기간 갈등의 지속으로 피해자·기업·정부의 3자간 신뢰가 낮은 점에서 조정이 어려웠다고 밝혔다.


2011년 처음 세상에 알려진 이후 10년이나 지지부진하던 가습기살균제 사태에 대한 사회적 해결책의 마련이 조정을 통하여 시도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재판에 대한 대안으로서 중재와 조정이 이용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법에 따라 시시비비를 가리는 강제적 분쟁해결인 재판과 중재와 달리 임의적 분쟁해결인 조정은 당사자들 사이의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협상을 통한 해결을 추구한다. 따라서 재판과 중재에서 각각 판사와 중재인이 해결의 결정권한을 가진 점에서 주역이라고 본다면, 조정에서는 조정인이 아닌 분쟁당사자들이 해결의 결정권한을 가진 점에서 주역이 된다. 특히 재판과 중재는 분쟁의 법에 따른 시시비비를 가리게 되고, 조정은 해결의 창의적 방법을 모색하게 되는 차이를 가진다. 이 점에서 피해의 발생에 대한 책임을 다투게 되는 재판이나 중재가 아닌 원만한 합의를 모색하게 되는 조정이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에 더 적합할 수 있다. 조정위원회도 기존의 분쟁해결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들이 적지 않아 조정방식의 사회적 합의를 통한 분쟁의 일회적, 종국적 해결을 도모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가습기살균제 사태는 관련 기업과 제품이 다수이고, 피해자의 피해 양상도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조정위원회가 당사자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구제 기준에 따른 조정안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입증을 통한 보상이나 구제가 어렵기 때문에 기업과 피해자들이 분쟁의 법적 판단이 아닌, 상호 이해와 양보를 전제로 한 조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즉, 조정위원회는 피해구제특별법을 통한 피해 구제나 법원의 판결을 통한 배상이 쉽지 않은 피해자들을 포괄적으로 구제하고자 하였다. 이 점에서 조정안은 엄격히 인과관계를 따지기 보다는 가급적 폭넓게 피해를 인정하고자 하였다. 즉, 인과관계를 기반으로 한 법적인 책임과 무관하게 사회·도의적 책임에 기반한 합의를 추구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조정안은 피해자의 신속한 지원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피해구제특별법을 통한 구제절차와 판단기준을 근간으로 하였다. 즉, 기업과 피해자들 사이에서 종국적인 해결을 도모하는 측면에서 가능한 신속하고 투명하고 타당한 조정안을 제안하고자 그동안 수행해 온 피해자 구제의 판정결과를 기본으로 한 것이다. 피해구제특별법은 2019년 개정되면서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질환을 포괄적으로 정의하면서 후유증까지 포함하여 건강 피해의 범위를 확대하였고, 가습기살균제 노출과 생명 또는 건강상의 피해간 인과관계를 일정 요건에 해당하기만 하면 추정되는 것으로 보아 피해자 범위를 대폭 확대하였다. 이러한 개정은 피해에 대한 인과관계의 과학적 근거가 아닌 사회정책적 접근을 수용한 것인데, 조정안도 이러한 접근을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조정안의 피해의 폭넓은 인정 및 피해자의 확대는 일견 최대한 포괄적인 구제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기업은 물론 피해자 간 입장 차이가 심화되고, 조정 기준의 공정성과 합리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될 수 있어서, 이는 결국 조정안의 수용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조정이 법적 판단에 따르지 않고 당사자들 사이의 협상을 통한 합리적 해결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최소한의 객관적 기준에 따르지 않는 조정은 당사자들의 상호 이해와 양보를 이끌어 낼 수 없다. 객관적 기준이 결여된 협상과 조정은 일시적으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어도 향후 지속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도모하는 지속가능한 해법이 될 수는 없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 조정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점에서 민간 차원의 '사적 조정'이라고 한다. 원래 사적 내지 민간형 조정은 민간조정인의 도움을 받아 분쟁당사자들이 자발적으로 분쟁을 협상을 통하여 해결하는 점에서 국내 법원의 민사조정, 검찰의 형사조정 및 각 행정부처와 기관의 행정형 조정과 구별된다. 그러나, 피해 구제 조정 절차에 정부가 참여하지 않은 점에서 형식적으로는 사적 조정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피해의 규모와 그 사회적 파장이 크고 정부도 피해 발생 및 확산과 관련되기 때문에 동 조정은 사적 조정이 아니라 사회적 조정이 되었어야 할 것이다. 마침 지난 2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관계 정부부처의 안전관리 부실로 초래되었다고 밝힌 점에서 정부는 피해 발생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피해자가 조정액을 수령하기 위하여 환경부의 피해판정을 받아야 하는 점에서 정부는 피해 구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관련 기업과 피해자들의 적극적인 요구에도 불구하고 조정위원회가 정부를 참여시키지 않았고 정부도 끝내 조정 절차에 참여하지 않은 사실은 사회적 성격의 조정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조정은 당사자들의 협상을 통한 해결인 점에서 당사자들의 이해와 양보가 중요하고 이 점에서 조정인과 당사자들 사이의 소통이 특히 중요하다. 조정위원회는 피해구제특별법에 따른 피해구제절차와 별개로 조사, 진단, 의무기록 검토, 의학적 판단을 비롯한 지원보상의 구체적인 절차를 독립적으로 밟는 것은 절차 지연을 유발하고, 별도의 실행주체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조정위원회는 환경부가 제공한 기초자료를 활용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실체적·절차적 한계를 당사자들이 수용하였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럼에도 조정위원회가 조정안을 내기 전에 당사자들을 이해하기 위한 소통에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조정위원회가 3번의 조정안을 내놓는 동안, 조정위-피해자-기업 3자간 공식적 만남은 한 번이었고, 조정안에 대한 각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식 조정 기일 역시 각각 2번씩에 그쳤으며, 이외에 비공식적 만남이 몇 차례 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점에서 조정위원회의 당사자들과 소통 내지 의견 수렴의 시간은 크게 부족하였을 것이다. 아무리 '신속한 지원 보상'을 위한 조정안의 마련이 중요하지만, 조정안은 당사자들의 이해를 충분히 반영하여야 한다. 피해자와 기업이 조정에 참여하는 이유, 조정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바람이나 공유하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피해자는 피해 지원을 통하여 하루 빨리 일상으로 복귀하고 싶을 것이고, 기업은 피해 구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는 인정을 받고 향후 기업 경영에서의 리스크를 해소하고자 할 것이다. 자칫 조정위원회가 신속하게 조정안을 만들기 위하여 당사자들과 충분한 소통에 소홀하였다면, 조정안에 대한 지지를 얻기 쉽지 않을 것이다.

위에서 조정안의 내용이 아닌 조정의 과정을 협상·조정의 관점에서 간략히 검토하였다. 조정위원회는 전례 없이 복잡한 사회적 참사인 가습기살균제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하여 노력한 것은 분명할 것이다. 관련 기업들의 내부 사정도 일치하지 않고, 피해자들도 저마다 입장이 크게 다르며, 사태 인지 후 이미 10년이 경과한 후에 수행된 조정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원래 의도와 달리, 이번 조정안이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종국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 그럼에도 가습기살균제 사태로 개인 피해자와 그 가족은 물론 관련 기업도 상당한 고통을 받고 있어서 이번 조정을 통하여 어느 정도 피해 구제가 가능하기를 기대한다. 또한, 이번 조정의 과정을 면밀히 분석하여 얻은 교훈으로 앞으로 유사한 사회적 참사에 관련된 분쟁이 조정을 통하여 슬기롭게 합리적으로 해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노형 교수(고려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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