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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프리즘

목소리가 들리게 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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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목요일, 퇴근길이었다. 평소처럼 교대역에서 2호선 지하철을 기다렸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지하철은 오지 않았다. 방송에서는 "을지로입구역에서 발생한 장애인 시위 때문에 지하철 운행이 지연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한참을 더 기다리니 지하철이 오기는 하였는데, 도저히 탈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창문 너머로 발 디딜 틈도 없이 꽉꽉 올라탄 다른 탑승객들의 모습이 보였다. 문이 한 번 열리기는 하였으나, 다시 하릴없이 닫혔다.


짜증이 났다. 약속을 놓치게 되었고, 일상이 어그러졌다는 것에. 마음을 다스려 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다. 장애인 이동권, 중요한 문제다.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왜 그 주장을, 아무런 의사결정권도 없는 일개 시민인 나와 이곳의 사람들의 출퇴근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인가. 출근 지각, 퇴근 지연으로 인한 불이익은 나를 비롯한 이곳의 시민들에게 돌아온다. 그 손해는 그냥 우리 보고 감수하라는 것인가.

그러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칼럼이 생각났다. 말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칼럼이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말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온몸을 불사르고, 수백 일을 지붕이나 전광판에 올라가 있어도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고. 그래서 그들의 메시지는 짧고, 과격하게 되더라는 요지의 글이었다. 이번에 시위에 나온 장애인들도 아마 그런 경우가 아니었을까 싶다. 온건한 많은 방법으로 말해도 자신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던 경우 말이다.

두 아이를 낳고 기를 때, 유모차만 끌고 다녀도 갈 수 없는 곳이 많아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턱'이 많아서 갈 수 없는 가게와 편의점이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계단을 올라야 하는 시내버스나 지하철은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아마 그들은 그런 좌절을 더 자주, 더 높은 강도로 경험해 왔을 것이다. 그래서 희망한다. 이렇게 과격한 방법을 동원하지 않아도 그들의 목소리에 충분히 경청해 주는 행정가들의 모습을.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사람들의 퇴근길과 저녁 일상이, 그런 절박한 시도들에 방해받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김화령 변호사 (서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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