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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법정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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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마음의 소리이다(言爲心聲). 내 마음을 잘 다스릴 때 바른 말이 나오는 법이다. 그러나 각박하고 치열한 세상에서 넓고 둥근 마음을 가지기는 참 어렵다. 일상의 대화에서부터 대선 후보의 토론에까지 거친 언사와 억지가 난무하는 것이 현실이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은 원래 "말로써 사람의 마음을 깨우치게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엔 말로써 사람을 실제 죽이려 들고,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혐오와 조롱으로 특정 대상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 세상의 관심을 얻는 방법이 되고, 돈벌이가 되었다. 이성과 양심으로 걸러지지 않은 언사를 내뱉는 경연장이 즐비하다.

그렇지만, 적어도 법적 절차에 따라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하는 법정은 가장 민주적이고 정제된 토론의 장이 되어야 한다. 법정에서는 판사든 당사자든, 검사든 변호사든 우열이 없고, 단지 주어진 역할이 다를 뿐이다. 주재와 심판을 맡은 판사는 편파적 진행을 조심해야 함은 물론이다. 토론의 주역인 당사자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마구 잘라서는 안 되고, 법을 잘 모른다고 비아냥거려서도 안 된다. 형식적 시간준수에 앞서 실질적 내용에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

근래 법정에서 양 당사자, 양측 변호사들이 마구 논쟁을 벌이는 일이 허다해졌다. 재판 주재자인 판사를 무시하면서 상대방의 말을 끊고 목소리를 높이는 광경은 정치인들의 토론장과 다를 바 없다. 판사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서로 간에 언쟁을 벌이는 것은 변론이 아니라 말싸움이다. 방청석의 의뢰인을 신경 쓰다 보니 그런 경우가 생긴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전문가라면 의뢰인에게 공정한 재판진행에 대하여 설명, 설득하는 것이 책무이다. 범죄사실과의 연관성을 벗어나 피고인을 흠집 내려는 검사의 의견진술 또한 전문가의 언어가 아니다.

객관적 접근과 법적 논리를 벗어난 말은 서면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상대방의 주장을 냉철하게 반박하면 그만인 것을, 상대의 주장을 왜곡하거나 견강부회하는 일이 허다하다. 당부를 객관적으로 지적하면 그만인 것을, 상대방을 무식하다거나 언어도단이라는 등으로 자극하고 모독까지 일삼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장 자크 루소는 공동선을 바라는 사회 구성원의 의지, 즉 일반의지가 법을 통하여 제도화될 때 조화로운 사회가 된다고 설파하였다. 법을 대체할 만한 다른 도구가 나타나지 않는 한, 우리는 법이 문명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시스템이라고 믿는다. 법을 구현하는 재판 과정은 말, 그리고 그 말을 옮겨놓은 글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말은 이성과 양심, 절제의 언어이어야 한다.

법정의 언어마저 품격과 논리를 잃고 거칠고 모진 언사로 뒤덮일 때, 문명의 법정은 야만의 싸움터가 된다. 격(格)을 갖추지 못한 말은 소리에 불과하고, 소음일 뿐이다.


홍기태 원장 (사법정책연구원)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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