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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침대는 과학인가?

‘혁신기술과 법의 관계’에 관한 합리적 논의의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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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는 가구가 아니고 과학이다"라는 한 침대 제조사의 광고문구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인체공학적 설계로 사람 몸에 최적화된 것임을 강조하려면 기술이라고 해도 충분했을 텐데 굳이 과학을 동원한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이 기술보다 차원 높은 개념이라는 일반의 인식 때문일 것이다. 또한 기술에는 좋고 나쁨이 있지만 과학은 그렇지 않아 '기술'이란 용어를 피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전통기업(brick and mortar corporations, BAM)과 달리 혁신기술 기업은 기존의 법규제와 충돌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법이란 현실을 전제로 하는데 점진적 발전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단속적(斷續的) 발전을 이룬 혁신기술, 더 나아가 파괴적 혁신기술(disruptive innovation technology)이 초래한 사회현상은 예상을 뛰어넘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새 기술을 법으로 규율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도한 경제력 집중, 인간의 물화(物化) 가능성 등 심각한 사회현상에 대처하기 위해 규제의 필요성이 있음에도 기업의 경쟁력, 나아가 국가경쟁력까지 내세우면 기술 규제의 목소리는 묻히기 쉽다. 이때 주로 등장하는 논거 중 하나가 "규제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흔히 기술 또는 혁신기술을 '과학기술'이란 이름으로 한 데 묶어 논의하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학문 분야를 인문사회, 과학기술 등으로 분류할 때는 과학과 기술이 하나로 묶일 수 있지만, 법(규제)의 적용 대상이 되는가를 논의할 때는 이 둘이 결코 한 묶음으로 취급될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혁신기술이 가져올 사회적 현상에 대한 법적 규제를 합리적으로 논의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에서 과학을 떼 내야 한다는 것이 필자가 갖는 문제의식의 출발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술에 대한 법의 역할과 평가가 오롯이 드러나게 되며, 비로소 기술과 법의 올바른 관계가 정립될 수 있다.

과학의 영역이라는 데 이론(異論)이 없는 뉴튼의 만유인력의 법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응용한 물레방아나 수력발전, 그리고 원자력발전이나 원자폭탄 등은 기술의 영역이다. 대상의 차이로 말하자면, 과학과 기술은 존재하는 것의 발견(discovery)이냐, 없던 것의 발명(invention)이냐로 구분할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과학의 연구대상인 자연의 법칙 또는 질서는 인간이 개입하여 조정하거나 바꿀 수 없지만, 기술의 연구대상은 인간의 개입으로 개발되고 변경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인류의 문명이 나온다.

기술에는 목적이 있게 마련이다. 이 과정에 가치가 들어가므로 법의 개입이 요구되기도 한다. 위 예에서 'E=mc²'이라는 공식으로 정리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는 빈부노소, 선진국·후진국, 과거·현재·미래 할 것 없이 항상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과학은 가치중립적이다. 그런데 원자력발전에는 경제적 효율 면, 안전도, 환경 측면 등 여러 고려 요소가 있는데 전문가들도 어떤 가치를 중시하느냐에 따라 의견이 갈린다. 비견한 예로 문재인 정부 초기 공론화 과정을 거쳐 원자력발전소의 가동 연장 여부를 결정했던 것은 법이 기술에 개입한 대표적인 예다. 원자폭탄 제조기술은 인류의 존망과 관련되므로 핵확산금지조약(NPT)이 국제적 합의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이 또한 규제의 하나이다.

가치중립적 영역인 과학에는 법이 개입할 수도, 개입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가치편향적인 기술 영역은 법이 개입해야 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에게 편리하고 큰 부를 가져다주는 기술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백신기술, 안면인식기술 등이 그렇다. 이런 기술이 혁신기술이라 하여 법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생명과 프라이버시는 무분별한 위험에 처할 수 있고, 부의 심각한 편중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가치편향적인 기술 영역에 법규제가 수반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주로 혁신기술 관련 법규제 논의에서 '기술' 대신 '과학기술'이라고 붙여 쓰면 마치 과학을 법으로 규제하는 것 같은 구도가 형성된다. 만약 이것이 의도된 것이라면 "기술과 법" 또는 "혁신기술과 법규제" 논의를 흐리게 하는 것으로서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 합리적 논의를 저해하기 때문이다. "침대는 과학이다"라는 가구 광고처럼 웃어넘길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기술, 혁신기술이 불러일으킨 법적 논의에서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할 것은 사용 언어와 개념에 관한 명확한 정의와 정립이다. 언어가 혼란스러우면 서로 허공에 대고 주먹질하는 것처럼 전 사회가 홍역을 앓듯 심한 논쟁을 했어도 그로부터 어떤 합의나 교훈도 얻지 못하는 사례가 더러 발생한다. 룰 세팅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혹 언어의 혼란을 방치하거나 그로부터 이익을 얻으려는 쪽이 있다면 결론과 무관하게 비판받아야 한다.

'타다' 사건 - 1심 판결이 선고되었고 현재 항소심 계류 중 - 은 우리 사회에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요약하면, '타다' 서비스를 운영하는 쏘카는 자동차대여사업자로서 운전자 알선 가능 대상인 11인승 승합차를 임대 제공했기 때문에 여객자동차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타다' 서비스의 실질을 무허가 유상 여객운송행위로 보아 여객자동차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법원은 피고인의 손을 들어주어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정부는 자동차대여사업자가 운전자를 알선할 수 있는 예외조항을 엄격하게 규정해 과거 '타다' 서비스와 같은 초단기 렌터카 영업을 불가능하게 법을 개정했다. 쏘카와 이에 동조하는 혁신기술 업계는 과도한 규제로 혁신기술이 고사할 것이라고 한 목소리를 낸다. 이 과정에서 '기술'이 '과학기술'로 둔갑하기도 한다.

재판에서 여객자동차법 해석에 관한 치열한 공방이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혁신기술 도입에 따른 기존 택시업계의 피해가 자리하고 있다. 플랫폼경제에 관한 법전문가인 샌디아고 로스쿨 교수 로벨에 따르면 플랫폼 법에는 쉬운 사례(easy cases)와 어려운 사례(hard cases)가 있다고 한다. 전자의 예로 시장진입 규제에 관한 경쟁법 사례를, 후자의 예로 공공복리 및 문화와 관련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례를 들었다[Orly Lobel, The Law of the Platform, 101 Minn. L. Rev. 87, 117-142 (2016-2017)]. 로벨은 우버(UBER) 요금제를 기존 업자와 신규 업자 간의 문제로서 경제적 효율 관점에서 다룰 수 있어 '쉬운 사례'로 보았다. 반면, 주거의 평온과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미국인의 의식구조 상 에어비앤비(Airbnb)는 공동체 전체의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어렵다는 점에서 '어려운 사례'로 분류했다. 물론 이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나라마다 택시면허 제도가 다르고 주거형태, 사회 안전(social safety), 프라이버시 문화 등에서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타다' 서비스에 관한 사회적 합의는 이 글의 논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글의 초점을 개념 정의에 두어 '타다' 서비스를 운영하는 쏘카가 온라인 플랫폼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온라인 플랫폼'이라 함은 '인터넷 기반'과 '양면 시장'을 필수요소로 한다. '타다' 서비스는 모바일 앱을 기반으로 운영되므로 양면 시장을 갖고 있는지가 문제 된다. 그런데 쏘카는 자동차대여사업자로서 1,500대의 차량을 보유하여 앱 사용자인 승객(렌터카 임차인)에게 대여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온라인 플랫폼사업자인 우버와 다르다. 우버 플랫폼은 한쪽에 이동 수요 시장(승객)을, 다른 한쪽에 자신의 차량으로 운전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시장(자차 운전자) 등 양면 시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쏘카가 온라인 플랫폼사업자로 분류되려면 쏘카의 렌터카를 운전할 기사 시장을 별도로 갖추고 있는지가 최종 관건으로 남는다. 플랫폼사업자가 되면 공정거래법상 여러 제한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쏘카는 운전기사를 별도의 인력공급업체로부터 공급받고 있었다. 결국 쏘카가 온라인 플랫폼사업자인지 여부는 직접 고용하지 않고 승객에게 간접적으로 연결해주는 형식을 취한 쏘카와 운전기사의 법적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달린 셈이다. 여기에서 이 사건은 노동법 쟁점과 깊은 관련을 맺는 형국이 된다.

한편, 개정 여객자동차법은 쏘카의 렌터카 형식을 빌린 여객운송 영업을 금지시키는 대신 여객자동차운송플랫폼사업이라는 새로운 업종을 신설, 국토교통부 장관의 허가사항으로 만들었다.

현행 여객자동차법은 '여객자동차운송플랫폼사업'을 "여객의 운송과 관련한 다른 사람의 수요에 응하여 이동통신단말장치,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서 사용되는 응용프로그램(이하 '운송플랫폼'이라 한다)을 제공하는 사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제2조 제7호). 그런데 이 조항 어디에도 양면 시장을 전제하고 있지 않다. 한편,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제정법률안(정부안)'은 " '온라인 플랫폼'이란 둘 이상 집단의 이용자들 간에 재화 또는 용역(일정한 시설을 이용하거나 용역을 제공받을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거래, 정보 교환 등 상호작용을 목적으로 하는 인터넷 홈페이지, 모바일 응용프로그램 및 이에 준하는 전자적 시스템"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1조 제1호). 이 법안이 통과되면 기존 여객자동차법의 운송플랫폼 정의 규정은 온라인 플랫폼의 필수요소인 양면 시장이 결여된 잘못된 입법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한편, 위 정부안 포함 국회 계류 중인 관련 법률안 8개는 온라인 플랫폼에 관한 정의를 각기 다르게 하고 있는데 양면 시장을 명확히 전제로 하지 않은 것이 4개나 된다.

이처럼 법률 또는 법안 별로 플랫폼에 관한 정의가 다르면 가뜩이나 정부 교체 시기에 플랫폼 정책을 두고 백가쟁명이 분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논의를 통한 합의 도출은 기대난망이 될 공산이 크다. 어떤 결론을 내려도 좋지만, 합리적 논의를 위해서는 법의 개입이 수반되는 기술 분야에 과학을 끌어들여 규제를 피하려 한다거나, 온라인 플랫폼에 관한 서로 다른 개념 정의로 혼란을 초래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남형두 교수(연세대 로스쿨)

리걸에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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