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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다시 살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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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렸다. 일기예보가 맞았다. 낮 기온이 섭씨 20도까지 오르더니 하늘이 비를 뿌렸다. 봄비는 메마른 땅을 적시고 생명에 다시금 숨을 불어 넣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고 꽃봉오리가 터진다. 바야흐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소생(蘇生). 거의 죽어 가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뜻이다. 재생(再生), 갱생(更生), 회생(回生) 등의 단어도 비슷한 뜻이다. 모두 생명과 관련한 말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회생'이라는 단어가 우리 법률의 이름에 쓰인다는 점이다. 2005년 제정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약칭 채무자회생법). 입법자는 재정적 파탄에 빠진 채무자가 채무조정을 거쳐 경제적 활동이 다시 가능하게 된다는 뜻을 '회생'이라는 단어에 담았다. 법률용어로 '회생'이라는 비유적 표현을 쓴 입법자의 시적인 상상력이 새삼스럽다. 2017년 신설된 법원의 이름도 '회생법원'이다. 도산법원, 파산법원 등 여러 선택지가 있었지만 입법자는 법원 이름에 오직 '회생'만을 허용했다. 생명에 대한 강한 의지는 이렇게 우리 법전과 사법부에 들어 와 있다. 그래서 봄에 어울리는 법을 꼽아 본다면 단연 채무자회생법일 것이다.

회생법원에 근무할 때 회생절차를 설명할 기회가 종종 있었다. 이때 비유적 표현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환자(채무자)는 골든타임(회생신청의 적시 타이밍)을 지켜 응급실(법원)에 도착해야 한다. 채무자는 인공호흡기(포괄적금지명령 등)를 달고 집행을 면하는 동안 숨 쉴 공간(breathing room)을 확보한다. 긴급수혈(신규대출 또는 M&A)이 중요하고 회생절차를 졸업하면 새 출발을 할 수 있다. 회생절차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친숙한 내용이다. 비유를 관통하는 핵심은 다시 살아나기 위한 노력이다. 소생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지만 회생에는 사람의 땀과 눈물이 필요하다.

산수유의 노란 꽃이 봄 햇살처럼 따스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경제적 타격을 입은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과 기업들은 아직도 추운 겨울이다. 최근 경제전문가들이 원유가격 급등, 공급망 불안 등으로 인해 조만간 퍼펙트스톰(여러 악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나는 경제적 위기)이 닥칠 수 있다는 암울한 예측을 내 놓기도 했다. 봄비 예보와 달리 이러한 예측은 오보로 끝났으면 좋겠다. 설령 맞더라도 꽃샘추위 정도로 잠시 지나가기를. 봄날, 소생하는 자연과 함께 회생의 기운도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이진웅 부장판사 (서울서부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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