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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교수회 수상작

[법학교수회 수상작] 자유의 법(로널드 드워킨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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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법'은 20세기의 위대한 법철학자 중 한 명인 로널드 드워킨이 구체적인 헌법 사안을 다루며 타당한 헌법해석론을 논의하는 책이다. 서문은 각 장을 이루는 글들을 관통하는 헌법해석론인 '도덕적 독법'을 설명하는데 그 분량이 상당하여 서문부터 읽으면 독자에 따라서는 다소 숨이 찰 수도 있다. 그러니 거꾸로 맨 마지막 장인 17장부터 펼쳐보도록 하자.

17장은 드워킨이 개인적으로도 알았던 미국의 전설적인 연방법원 판사 러니드 핸드의 인간적인 면모를 그려내면서 그의 엄격한 사법자제론을 논평한다. 핸드 판사의 유명한 판결 중 하나는 수정헌법 제1조는 위험한 언론이라도 직접 범죄를 선동하지 않는 한 금지되거나 처벌되어서는 안 되며 방첩법은 그 제한을 준수하도록 해석되어야 한다는 판결이었다. 이것은 수정헌법 제1조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정치도덕적 원리로 읽은 판결이다. 그러나 핸드 판사는 나중에는 도덕적 쟁점에 관해 의회가 입법한 것은 국가의 마비를 초래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닌 한 법원이 이를 무효화하는 권한이 없다는 매우 엄격한 사법자제론을 취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심지어 인종분리학교를 위헌으로 선언한 브라운 판결마저도 판사의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핸드의 엄격자제론의 근거 중 하나는 도덕적 진리의 불확실성과 복잡성이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충분히 근거가 되지 못하는데 도덕적 진리가 까다로워 확신을 쉬이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입법자들의 견해가 강제로 관철되는 것의 오류에 대해서도 경계하고 그로부터의 보호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핸드의 근거는 시민이 스스로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헌법의 해석에 있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에 있었다. 그리고 입법자인 인민의 대표는 시민이 선출하는 과정에서 역할을 하지만, 판결에 있어서 인민은 단순히 수호자 무리에 의해 통치되는 지위로 전락한다는 더 나아간 판단에 있었다. 그러나 드워킨은 무수히 많은 표 중 하나로 집계되는 것이 민주주의에서 유일한 시민의 역할이 아니라는 점을 짚는다. 즉 흑인이 차별로부터 보호될 수 있는가, 무신론자들이 공립학교의 졸업기도에 참석하도록 해도 되는가 등의 근본적인 원리의 사안에서는, 핸드 스스로 강조한 지위, 즉 사람들이 적용받는 법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사람들이 공동 사업의 동반자로서 그 법에 관한 도덕적 논변에 참여하는 지위는, 단순한 투표가 아니라 헌법해석에 관한 공적 토론에 참여하는 역할을 통해 더 뒷받침될 수 있다고 짚는다.

그리고 이런 논지에 대해 더 풍부한 설명을 서문으로 돌아가 읽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핸드 판사와 마찬가지의 선의와 명민함을 가지고서, 정치도덕적인 논증 없이 헌법 사안을 해결하려는 방법론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두 가지 오해에 기반해 있다. 하나는 헌법의 입안자들이 헌법 규범으로 설정하고자 의도한 바가 무엇인가와 그들이 그런 규범을 설정함으로써 결과로 일어나기를 기대했거나 희망한 바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번에 공석으로 된 그 직에 공정하게 최선의 능력을 갖춘 사람을 선발하라"고 말한 사람이 자신의 말로 지시한 바는 공정하게 최선의 능력을 갖춘 사람을 선발하라는 것이다. 설사 그 사람이 그 지시를 따르면 자신이 염두에 두고 있던 인물 A가 선발되리라고 기대했더라도, "이번에 공석으로 된 그 직에 A를 선발하라"가 그 사람의 지시가 의미하는 바는 아니다. 헌법 해석은 그 입안자들이 말한 바의 결과로 기대하거나 희망한 것이 아니라 말한 바에서 시작해야 한다. 다른 하나의 오해는 입헌민주주의를 구성원들이 법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수범 의무를 지게 하기 위한 관계적 조건에 관한 것이라 보지 않고 단지 특정 시기의 사람들이 고정한 몇 가지 사항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다수에 의해 결정될 때 정당하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주의 정당성의 본질이 다수의 시민이 선호하는 결정을 관철하는 데 있다고,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데 있다고 보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의 동등한 지위라는 조건을 전제로 하는 통치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의회의 법과 정부의 결정이 그저 낯선 외부의 힘이 아니라 '우리 인민'의 결정으로 정당성을 가지고 그에 따라 수범 의무를 발생케 하려면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적 조건이 성립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 공동체가 갖추어야 할 그런 관계적 조건이란, 첫째 개인에게 모든 집단적 결정에 관해 하나의 역할을 부여할 것, 둘째, 모든 구성원들의 이해관심에 대한 평등한 배려를 정치과정이 구현할 것, 셋째, 공동의 결정으로 꾸려나가는 공동 사업의 진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도덕적 독립성을 가진 존재로 대우될 것, 세 가지이다. 이러한 관계적 조건이 없으면 다수결의 정치과정은 한낱 수의 집계를 관철하는 날 것 그대로의 사실에 불과하게 된다. 헌법은 바로 이러한 관계적 조건을 헌법상 권리와 자유로 확고히 함으로써 민주주의가 그 조건 하에서 전개되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규범이다. 그러한 관계적 조건은 정치도덕의 문제를 다루므로, 그런 관계를 규정한 헌법 해석은 정치도덕적 논증을 그 일부로 포함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치도덕적 논증에 의해 인종분리학교는 법의 평등한 보호를 부인하는 것이라는 위헌 판결은 다수의 결정을 뒤엎음으로써 민주주의를 훼손한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우리 인민'으로서 민주주의라는 공동 사업의 동반자로서 계속 존속하기 위한 조건을 회복한 것이다. 따라서 특히 기본적 권리와 자유가 문제되는 헌법 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근거로서 헌법을 해석할 때 '평등한 보호'가 무엇인가,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형벌'이 무엇인가, '적정절차'가 무엇인가의 쟁점을 구성원들 간의 정당성 있는 관계를 위한 근본적 조건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논의를 전혀 참조하지 않고 다루는 것은 잘못된 이해라고 드워킨은 말한다.


그러나 드워킨이 말하는 '도덕적 독법'을 그저 헌법의 문언과 헌법해석을 담당해온 기관의 결정을 무시하고 도덕적으로 자신에게 호소력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내용으로 헌법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결코 안 된다. 헌법 문언이 출발점이자 한계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드워킨은 헌법적 통합성의 요청에 의해 규율되어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말한다. 헌법 전체의 구조적 설계와 과거 헌법 해석의 지배적 방향과 일관되지 않은 헌법적 주장을 함부로 관철시킬 수 있다면, 더 이상 구성원들은 공동 사업의 동등하고 자유로운 동반자가 아니라, 사실상 그 어떤 사업의 동반자도 되지 않을뿐더러 원리의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니라 자의적인 규칙집에 종속되는 지위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론적 바탕 위에서 1장부터 3장, 6장에서는 유명한 로(Roe) 판결 및 그 판결을 이어받은 판결에 가해진 도전과 함께 임신중절의 권리를 살펴보면서 국가가 인간 생명과 삶의 내재적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존중할 것인가에 관한 판단에서 개인의 심원한 윤리적 판단이 갈릴 때 그런 윤리적 숙고에 대한 책임 있는 태도를 증진할 수는 있으나 내재적 가치에 관한 다수의 특정 판단에 개인을 순응케 하기 위해 국가가 강압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로 판결과 같은 원리에 관한 판결의 변경은 원리에 기반한 통합성이라는 전반적인 목표 그 자체가 변경을 요구할 때에만 변경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 기준을 함부로 훼손하려는 시도에 대해 비판한다. 5장에서는 영구적인 식물인간 상태에서 생명을 지속하여야 한다는 윤리적 결정을 국가가 강압을 통해 관철하려는 것에 대해서도 비슷한 구조의 비판을 한다. 7장부터 11장까지는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다루면서, 이러한 자유들은 진리가 경쟁에서 살아남아 확산되게 한다는 도구적 논증만이 아니라, 그런 자유가 없다면 개인은 무엇이 옳고 참인지 믿을 도덕적 독립성을 훼손당하게 되며 그래서 민주주의의 온전한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구성적 논증에 의해서 더 강하게 뒷받침되며 이 점을 고려하여 해당 기본권 조문을 해석해야 한다는 점을 밝힌다. 12장부터 16장까지는 논란이 되었던 대법관 후보 인준 과정 상세히 다루면서, 원리의 정치공동체에서 대법관 후보들이 헌법 사안에 관한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하면서 그저 '헌법에 따르겠다'고 말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되며, 자신이 판단해야 할 바를 헌법 입안자들의 과거 구체적 의도에 정합성 없게 미루는 견해는 일관되게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을 논한다.

드워킨은 17장에서 핸드가 만들어낸 '자비스트(jobbists)'라는 말을 언급한다. 자비스트란 명성이나 주변 관심을 의식하지 않고 받는 급여 수준을 넘어 시장이 통상 기대하는 수준보다 더 나은 제대로 된 질로 일하는 장인에 속하는 이들이다. 법철학의 대가의 풍모를 여지없이 발휘하면서도 문학적인 글솜씨로 흥미를 돋우는 통찰력 넘치는 글을 썼다는 점에서, 그 견해의 찬반을 떠나 드워킨이야말로 법학자들의 자비스트 회장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민열 교수(방통대 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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