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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하(何)세월' 신체감정 이대로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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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 검색시스템에 따르면, 2022년 선고된 민사 제1심 판결 중 '신체감정'이라는 단어가 판결문에 들어가 있는 것은 합의, 단독, 소액 모두 합쳐 311건이었다. 그 중 사건번호가 '2021'로 시작하는 것은 52건으로 전체의 16.7%에 불과했다. 2020년 사건이 117건(37.6%)으로 가장 많았고, 2019년은 88건(28.2%), 2018년 40건(12.8%) 등으로 나타났다. 놀라운 것은 2017년에 접수된 사건도 12건(3.8%)이나 됐다. 심지어 2016년(!) 사건도 하나 나왔다. 불의의 사고로 몸을 다친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 1심에서만 2~3년은 기본이고, 많게는 5~6년까지도 기다린다는 것이어서 마음이 굉장히 무거웠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널리 알려져 있듯 신체감정이 수반되는 손해배상 소송이 지체되는 가장 큰 원인은 '촉탁→반송→촉탁→반송'의 핑퐁게임으로 인한 허송세월이다. 감정을 하지 못할 사정이 있으면 곧바로 되돌려 보내주면 그나마 나을 텐데, 가끔은 몇 개월씩 그냥 가지고 있다가 독촉하면 그때서야 반송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원칙적으로 감정의는 무작위 선정하도록 하고 있어, 회신을 잘해주는 의사에게 사건을 몰아줄 수도 없다.

대학병원, 종합병원의 과장급 이상 전문의로서는 40만 원의 감정료(그나마 2017년에 두 배로 올린 금액)에 바쁜 시간을 쪼개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을 수 있다. 애써 감정서를 작성해 보내도 승복하지 못하고 원하는 답변이 나올 때까지 '주리를 틀 듯' 보완을 요구하는 것 역시 부담으로 작용할 것 같다. 가끔 운 좋게 책임감을 갖고 다른 진료과목과의 연계까지 신경 써서 감정서를 작성해주는 의사선생님을 만나면 감사와 존경의 마음이 절로 든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개별 의사의 선한 마음에만 신체감정의 운명을 맡겨야 하나. 의료기관이 법원에 협조할 의향이 있더라도, 소속 전문의가 선뜻 내켜하지 않는 경우라면 감정의 명단에서 일괄 제외하여 '촉탁→반송'의 헛수고라도 줄여야 한다. 기꺼이 신체감정을 하려는 분만 남긴다는 전제에서 감정료를 대폭 현실화할 필요도 있다.

감정의사 풀(pool)이 협소해지는 문제는, 꼭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소속이 아니더라도 '배상의학'이라는 새로운 전문분야를 개척하고자 하는 실력 있는 젊은 의사들을 발굴·육성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손해배상 판결을 받기 위해 제1심에서만 수년씩 기다리는 피해자들을 생각한다면 신체·진료기록감정 전문 공공병원(가칭 '국립 의료감정센터') 설립과 같은 근본적인 해법도 고려할 때가 되었다.


차기현 판사 (광주고법)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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