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서초포럼

상속분의 의미

177148.jpg

민법 제1009조는 법정상속분에 대해 동순위의 상속인이 여럿인 때에는 그 상속분은 균분으로 하고, 배우자가 상속인인 경우에는 다른 공동상속인들보다 가산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민법 제정 후 여러 번의 개정을 거쳐 오늘과 같은 내용이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상속분 개정에 관한 논의는 진행 중이다. 민법은 1958년 제정되어 1960년 1월 1일부터 시행이 되었는데, 민법 시행 이전에 개시된 상속에 관하여는 구법이 적용된다. 이 시기 상속에 관하여 대법원은 "호주가 사망하면 그의 전재산이 호주상속인에게 이전되고 차남 이하의 상속인들은 호주상속인에 대하여 재산의 분배를 청구할 권한만이 있다"고 판시하여(대법원 1988. 1. 19. 선고 87다카1877 판결) 구법 시대 관습은 원칙적으로 호주인 장남의 단독상속임을 밝혔다.


우리는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 초기만 해도 딸도 아들과 돌아가며 제사를 지냈고(윤회봉사 輪廻奉祀), 비록 적서의 차별은 있었지만 재산을 균분 상속하였는데, 조선 중기 딸이 상속에서 배제되면서 아들만 상속을 받았고, 조선 후기로 오면서 이런 차별이 더욱 심해졌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권내현 교수는 균분상속에서 장자를 우대하는 차별적인 상속은 조선시대 강화된 성리학의 영향보다 사회경제적인 변화를 이유로 든다(권내현, 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 즉, 균분상속은 필연적으로 재산의 감소를 가져오기 때문에 결국은 부의 집중으로 재산과 가문을 보존하려는 생각이 강력해지면서 이런 장남우대상속이 성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 16세기까지 다수의 양반에게 경국대전이 정한 균분상속은 큰 문제가 없었다. 부모로부터 공평하게 재산을 상속받은 그들은 딸도 상속을 받게 되니 결혼을 통해 재산규모를 늘릴 수 있었고, 사회전체의 경제 규모가 커지고 있었기에 균분상속이 유지되더라도 버틸 만한 여력이 있었다. 하지만 균분상속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개별 가계의 재산규모를 줄어들게 하였고 정약용 역시 그 문제를 지적할 정도였다고 한다.

윤회봉사와 함께 가계가 반드시 장남과 장손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들이나 친손자가 없으면 외손자가 집안의 제사를 이어가기도 했던 그 오랜 관습이 사회경제적인 환경이 변화하자 장남우대상속과 함께 아들이 없는 장남을 이을 인물로 양자를 선택하고, 딸 대신 조카나 다른 친족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현재는 아들과 딸, 적서의 차별은 물론 장남과 차남의 구별도 없다. 다시 균분상속의 시대다. 하지만 이 원칙도 다시 시대의 이념과 사회경제적인 동력에 의해 언제든지 차등적으로 조정될 수 있다. 부양이 필요한 배우자인 상속인의 생존을 위해 상속분 조정이 필요하다는 내용뿐만 아니라, 가업승계가 가능하도록 특정 상속인에게 재산 전부를 상속하는 것이 가능해야 된다는 논의도 넓은 의미에서 같은 맥락에 있다고 생각한다.


배인구 변호사 (법무법인 로고스)

리걸에듀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