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법조광장

러시아 피겨스케이팅 선수 발리예바 도핑 사건의 오해와 진실

176847.jpg

1. 사건 개요

지난 2월 20일 종료된 제24회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전세계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았던 사건은 러시아의 세계 최고 피겨스케이팅 선수 발리예바의 도핑사건이었다. 작년 12월 25일 러시아선수권대회 출전 당시 소변 샘플에서 금지 약물 성분인 트리메타지딘(비특정약물, Non-Specified Substance)이 검출된 사실이 올림픽 기간 중인 2월 8일 통보되면서 올림픽 출전이 정당한지가 문제되었다. 해당 약물은 협심증 치료제로서 정상인이 복용하면 심장근육의 효율적 산소 사용을 가능하도록 하여 지구력을 향상시키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시 러시아도핑방지위원회(RUSADA)는 규정에 따라 발리예바에게 임시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가 불과 10시간 만에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의 이의를 받아들여 임시자격정지처분을 취소하는 매우 이례적인 조치를 하였다. 이에 즉각적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세계도핑방지위원회(WADA), 국제빙상연맹(ISU) 모두 RUSADA의 임시자격정지 취소 처분이 위법하다고 주장하면서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하였다.(CAS OG 22/08,09,10 IOC, WADA, ISA v. RUSADA, ROC, Valieva)

그런데, 2월 14일 CAS는 IOC 등의 신청을 기각하고 선수의 손을 들어주면서 발리예바는 경기에 계속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IOC는 발리예바가 입상을 하더라도 시상식을 열지 않겠다는 강경한 대응방침을 천명하였다. 발리예바가 개인전에서 종합 4위를 하면서 개인전 시상식은 개최되었지만, 그녀가 참가하여 우승한 단체전 시상식은 열리지 않은 채로 그대로 종료되었다.


2. 스포츠중재재판소(CAS) 결정 내용

CAS의 보도자료와 결정문을 통해 공개한 바에 의하면 발리예바에게 내려진 임시자격정지처분이 위법하다는 근거는 다음 네가지이다.

첫째, 선수는 16세 미만의 보호대상자(Protected Person)로서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 둘째, 세계도핑방지규정(WADC) 등 관련 규정에서는 보호대상자에 대해 특별한 대우를 하고 있으나, 임시자격정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을 하고 있지 않다. 셋째, 임시자격정지가 적법한지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공정성, 비례원칙, 회복할 수 없는 손해, 이해관계의 형량 등 기본원칙들을 고려해야 한다. 넷째, 2021년 12월에 행해진 도핑검사결과 통지가 지나치게 늦어져 선수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적 조치를 강구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선수의 잘못이 아닌 지연된 통지문제로 선수에게 불이익을 가하는 것은 부당하다 더구나 도핑은 올림픽 기간 중에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입상이 유력한 선수가 생애 중 단 한차례 참가할 수도 있을 올림픽 경기에 불참하는 것은 15세의 나이 어린 선수에게 회복불가능한 손해를 초래하게 되어 이는 명백히 불공정한 처분이므로 임시자격정지를 취소하고 올림픽 참가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CAS는 결정문에서 이 사건이 선수의 올림픽 출전 자격을 심사하는 것에 불과하지 도핑에 대해 향후 내려질 제재처분은 별론으로 한다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결정이 발리예바가 도핑 혐의를 벗어났음을 인정한 것은 아니므로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이와 같이 선수의 나이나 경력, 출전 제한으로 인한 잠재적 손해 등을 고려하면 일응 수긍할 수도 있는 면도 있다.


3. CAS 결정의 문제점

하지만, 금번 결정은 논리와 근거에 있어서 상당한 문제점을 갖고 있어 바람직하지 못한 선례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첫째, 세계도핑방지규정(WADC)에서 16세 미만의 선수를 보호대상자(Protected Person)로서 특별히 보호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도핑이 적발된 일반 선수는 무과실 면책을 받기 위해서는 해당 금지약물이 체내에 어떻게 유입되었는지 증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보호대상자는 그런 증명이 필요 없다.(WADC Appendix 1) 중대한 과실이 없음이 입증되는 경우 보호대상자는 자격정지가 면제되는 견책 처분도 가능하다.(WADC §10.6.1.3) 그리고 도핑제재결과를 공개함이 원칙이나 보호대상자는 비공개도 허용된다.(WADC §14.3.7) 하지만 임시자격정지에 관한 규정에는 보호대상자와 일반선수를 구분하지 않고 이 사건과 같은 비특정약물(Non-Specified Substance)에 대해서는 의무적으로 임시자격정지(Mandatory Provisional Suspensions)를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결정문은 이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WADC §7.4.1)

둘째, CAS는 "보호대상자에 대한 도핑제재에 특별한 우대를 하고 있음에도 임시자격정지에 있어서는 일반선수와 동등한 취급을 하는 것은 규정의 흠결"이라면서 이는 CAS 결정을 통해 보완되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특정약물이 검출된 선수에게만 허용하는 선택적 임시자격정지(Optional Provisional Suspensions) 규정을 보호대상자에게도 적용해야 한다는 전례 없는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셋째, CAS는 임시자격정지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공정성, 비례원칙, 회복할 수 없는 손해, 이해관계의 형량 등 기본원칙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그 근거로서 스포츠중재규정(Code of Sports-related Arbitration) R.37(5)를 들고 있다. 도핑체계의 기본규범이라고 할 수 있는 WADC에도 없는 내용을 근거로 들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위 중재규정이 들고 있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선수의 청구 인용가능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아무리 보호대상자라고 하더라도 면책을 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금지약물의 체내유입에 본인에게 중과실이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선수가 제시한 변명은 심장질환이 있는 할아버지의 약물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염된 제품(Contaminated Product) 항변이 받아들여진 선례가 있기는 하지만, 매우 상세하고 구체적인 증거제시가 있어야 한다. 더구나 도핑검사결과에서 심장질환과 관련된 다른 두 종류의 비금지약물이 추가로 검출된 점은 15세의 선수가 체계적인 약물관리를 받았음을 시사한다. 유사 사례(CAS 2017/A/5296 WADA v. Roberts; CAS 2019/A/6313 Lawson v. IAAF 등)나 이론에 비추어 보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매우 낮은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CAS는 2021년 12월 25일 행해진 도핑검사의 결과가 44일이나 경과한 올림픽 대회기간중에서야 통보된 것은 도핑검사를 주관하는 WADA의 책임이므로 오로지 선수에게만 그 불이익을 부담시켜서는 안 된다고 설명한다. 물론 절차적인 문제는 선수의 과실이 아니므로 이것을 선수의 책임으로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는 타당하며 이는 다른 결정례에서도 인용된 바 있다.(CAS 2012/A/2789 등) 그러나, 통상 올림픽과 같은 중요한 국제경기를 앞두고 이루어진 도핑검사에 있어서는 당연히 신속검사절차(Expedited Procedure)를 요청하는 관례에 따라 선수의 샘플에 특별한 표식을 하여 검사실로 보내야 함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은 RUSADA가 이 사건의 당사자라는 점도 고려되어야 했었다.

이번 CAS 결정은 도핑방지규정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여 도핑에 대해 엄정한 태도를 취해 왔던 종전의 선례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임시자격정지처분을 다룬 유사 사건들을 보더라도 해당 선수에게 직접 적용되는 도핑 규범 자체를 기준으로 판단을 해왔지 다른 규정들을 유추 적용하지 않았다는 점에 비추어 보아도 이번 결정은 매우 이례적인 논리 구조를 갖고 있다.(CAS 2017/A/4968 Legkov v. FIS 등)

WADA는 2003년 규정을 제정한 이래로 지금까지 다섯 차례 개정을 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 끝에 도핑선수의 임시자격정지에 관해 의무적 임시자격정지 처분(비특정약물)과 선택적 임시자격정지 처분(특정약물)을 선수가 아닌 금지약물의 종류에 따라 구분하는 것으로 명문화했다. 즉, 보호대상자라고 하더라도 임시자격정지 처분에 대해서는 특별한 대우를 하지 않는 것이 임시자격정지 처분의 취지에 부합하다는 것이다.


4. 결론

스포츠 경기의 규칙이 지역마다 다르지 않듯이 도핑방지규범은 전세계 공통규범이다. 이를 실행하는 조직 체계나 절차가 해당 국가의 여건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CAS의 결정문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 'the lex lata'(the law as it is)와 같이 도핑방지규정의 일관되고 엄격한 적용이 전 세계 스포츠의 공정 실현에 가장 효과적인 방향이라고 할 것인 바, 발리예바 사건에서 보여준 CAS의 태도는 이 점에서 매우 아쉽다.

비록 베이징올림픽이 종료되었지만, 거센 후폭풍이 예상된다. 러시아 피겨코치인 투트베리제의 도핑 관여 가능성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고, 2014년 폭로된 러시아 도핑 스캔들로 인해 2020년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로드첸코프법(Rodchenkov Anti-Doping Act)에 따라 미국이 수사를 개시할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이 법은 미국 선수, 미국 방송 관계자, 후원사 등이 참여하는 국제 대회에서 도핑 사건에 연루된 사람을 미국이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한 법인데 최고 징역 10년까지 처벌이 가능하다. 사실상 보편적 형사관할권을 인정하여 베이징 올림픽 도핑사건도 수사대상이 될 수 있다. 현재의 미국과 러시아의 대립관계를 고려하면 한 러시아 선수의 도핑사건이 외교적 문제로도 비화될 가능성까지 있다. 이 사건의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권순철 대표변호사(SDG 법률사무소·한국도핑방지 항소위원)

 

미국변호사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