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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노동이사제의 시행과 그 역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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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 통과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2022년 1월 1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올해 하반기부터 시행된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의하면, 공기업과 준정부기관(기타 공공기관은 제외)의 이사 정원은 원칙적으로 15인 이내인데(법 제18조 제1항 본문), 이 중 1명을 노동이사(상임이사가 아닌 비상임이사)로 임명해야 한다. 노동이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3년 이상 재직한 근로자 중에서 근로자대표(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 그 노동조합의 대표자)의 추천이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은 사람이고, 임기는 2년이며 1년 단위로 연임할 수 있다(법 제25조). 이러한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는 공공기관은 한국전력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공기업 36곳과 국민연금공단, 한국언론진흥재단 등 준정부기관 95곳 등 131곳이고, 예금보험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일부 금융 공공기관도 포함되나, 한국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한국예탁결제원 등은 기타 공공기관이므로 적용대상이 아니다.

이명박정부의 해외자원개발, 문재인정부의 탈원전정책과 같이 정치권력이 공공기관의 자원배분을 왜곡해왔다는 지적은 진보, 보수정권을 막론하고 계속되어 왔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경영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긍정적인 의미와 함께 공공기관내부의 노사갈등을 증폭시키고 경영권과 주주이익을 침해한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2. 노동이사제의 역사적 연원

역사적으로 노동이사제는 1920년대 독일 사민당의 경제민주주의노선에서 출발한다. 독일 사민당은 마르크스의 급진적인 공산혁명노선을 폐기하고 노동조합운동, 노동자의 의회진출 등 사회민주주의를 제창했고, 이를 바탕으로 나프탈리가 최초로 경제민주주의 개념을 제시하면서 노동이사제를 주장한 것이다. 2차대전 이후 1951년 독일에서 드디어 노동이사제가 시행되어 유럽 19개국에서 이를 도입했고, 스페인, 포르투갈 등 4개국은 우리나라와 같이 공공부문에만 적용했다.

독일의 노동이사는 감독이사회에만 참여하여 회계부정 등을 감시하는 역할만 수행하고 경영이사회에는 참여하지 않으나, 우리의 공공기관 노동이사는 경영에도 참여하게 되는데, 독일은 산별 노조를 기반으로 협력적 노사문화가 정착된 데 반해, 한국은 기업별 노조 중심의 대립적 노사관계여서 이사회에서 노사갈등이 우려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1981년 저명한 정치학자 로버트 달이 정치적 민주주의 이외에 경제영역에서도 경제민주주의를 위해 노동자들이 기업의 소유와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는 자치기업이론을 주장하여 노동이사제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바 있다.


3. 독일 사민당의 수정주의, 나프탈리의 경제민주주의

20세기 제국주의시대가 도래하자 유럽 사회주의운동은 마르크스의 공산혁명노선을 폐기하고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채택했다. 베른슈타인은 20세기 독점자본주의하에서는 자본주의는 붕괴하지 않고 지속될 것이므로, 노동자들의 무장봉기나 급진적 혁명노선을 폐기하고, 노동조합운동, 의회진출 등 점진적 전진을 통한 권력 획득, 즉 사회민주주의 노선(수정주의)을 제창했다.

힐퍼딩은 바이마르공화국에서 사민당 집권시에 재무장관을 역임하면서 사민주의자들이 자본주의를 조직화된 자본주의로 대체함으로써 보다 점진적으로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힐퍼딩이론을 바탕으로 1928년 독일노동총연맹의 나프탈리가 최초로 '경제민주주의' 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경제주주의의본질·방법·목표 Wirtschaftsdemokratie,Ihr Wesen,Weg,Ziel), 경제민주주의란 사회주의로의 점진적인 이행전략이며, 구체적인 정책으로는 노동이사제(기업의 공동결정제), 주요산업(특히 금융산업)국유화 등을 제시했다.

2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한 이후, 집권한 기민당 아데나워 정부의 에르하르트 경제부장관은 '발터 오이켄의 질서자유주의에 기초한 사회적 시장경제'를 내세우면서, 사민당의 경제민주주의 노선을 파기했다. 기민당의 질서자유주의노선은, 정부는 시장경제의 '질서' 확립에만 개입하며 경제활동은 개인과 기업의 자유에 맡긴다는 원칙(정부불개입주의)으로, 사민당의 경제민주주의(정부개입주의)와는 정반대의 대립개념이었다.(필자, 헌법상 소위 경제민주화조항의 남용에 대하여(법률신문 2021. 5. 17.자); 오이켄의 질서자유주의와 사회적 시장경제의 본질(법률신문 2007. 1. 8.자))

1959년 독일사민당은 고데스베르크강령으로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했고, 2007년 함부르크강령 이후 경제민주주의를 사실상 폐기했다. 독일 및 유럽 좌파정당들의 제3의 길(영국 토니블레어의 신좌파, 독일 슈뢰더의 신중도) 역시 성장과 분배라는 목표에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했고, 2005년 이후 독일 기민당 메르켈 정부는 질서자유주의가 성장 뿐만 아니라 소득분배에서도 우월함을 실증적으로 증명해왔다.


4.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달의 경제민주주의

1981년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로버트 달이 '경제민주주의' 이론을 주장했다('A Preface to Economic Democracy'). 그는 정치영역에서 민주주의의 중추적 원리가 자기통치원리이고, 기업에서도 노동자들의 자기통치원리가 사유재산보호원칙 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경제민주주의를 위해 노동자들이 기업의 소유와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는 자치기업(self-governing enterprise)이론을 주장했으나, 현실의 경제는 그의 이론을 외면했다. 로버트 달은 탁월한 정치학자였으나 경제학은 문외한이었다.


5. 한국헌법의 경제민주화

독일에서는 이미 무덤속에 들어간 경제민주주의가 1987년 한국헌법 제119조 2항 경제민주화 조항(정부의 광범위한 경제개입조항)으로 부활했다. 독일 질서자유주의의 경제정책노선인 사회적 시장경제노선(정부불개입주의)은 우리 헌법재판소에서 광범위한 정부개입주의를 의미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라는 법리로 탈바꿈했다. 독일에서 우파이론이 한국 헌법재판소에서 좌파이론으로 세탁된 것이고, 독일에서 아담스미스가 한국에 와서 케인즈로 뒤바뀐 것이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혼동과 혼란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즉 헌법재판소가 우리헌법119조의 경제질서를 헌법119조2항의 '경제민주화' 이념에 근거한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라고 판시하자(헌재 2001. 6. 28. 2001헌마132: 헌재 2003. 11. 27. 2001헌바35), 한국정치는 우리헌법 제119조 1항의 원칙인 자유시장경제질서의 원칙을 애써 외면한 채, 우리헌법 제119조의 경제질서는 독일 사민당식의 '경제민주주의' 이념에 근거한 '사회민주주의적' 시장경제질서라고 오독해온 것이다.

경제민주화라는 유령은 헌법재판소의 희대의 착오인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라는 가면도 벗어 버리고, 인민민주독재하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중국헌법 15조)가 자신의 진짜 얼굴임을 공공연히 선포할는지도 모른다. 중국헌법상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중국공산당 영도하의 인민민주독재라는 절대적인 한계내에서만 허용되고(중국헌법1조, 중국공산당규약총강령), 이점이 현재 중국경제발전의 주요모순이다. 중국헌법 보다 상위규범인 중국공산당규약총강령 조차도 '인민의 수요와 생산력 발전에 적응되지 않는 상부구조(사회주의 정치체제)의 개혁이 근본과제'라고 명시하고 있다(필자, 중국헌법상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본질에 대하여, 법률신문 2021. 6. 14.자).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은 시대를 거슬러 1920년대 사회주의 혁명의 시대에 독일 사회주의정당이 추구했던 경제민주주의 노선으로, 1981년 경제학의 문외한인 미국 정치학자의 낭만적인 서사인 경제민주주의 이론으로 퇴행하고 있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의 예언처럼 "세계사적 사건은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루이보나파르트 브뤼메르 18일'). 그러나 "희극(경제민주화가 사회적 시장경제라니 이는 희극이다!)으로 반복되는 것이 원래 비극보다 훨씬 더 끔찍한 것이다"(마르쿠제 H.Marcuse).


6. 도전과 응전

역사에 있어서 이론은 언제나 회색이며 역사적 진리는 오직 인간들의 역사적 실천에 의해서만 증명되는 것이다. 2022년 대한민국의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후보가 모두 동의함으로써 무난하게 국회를 통과했다. 향후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노사간의 상생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노사갈등의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인가. 1880년대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자유주의를 억압했으나 세계최초로 의료보험, 산재보험, 연금보험 등 사회보장제도를 시작했고, 1970년대 박정희 역시 권위주의 정치를 펼쳤으나 저소득층 의료보험제도를 시행하여 오늘날 세계적인 수준의 건강보험제도의 기틀을 갖추었다.

인간의 역사는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도전와 응전의 과정이었다. 2022년 하반기부터 시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역시 경영의 공정성 확보와 경영권 침해라는 측면이 대립하고, 이러한 모순을 극복해 나가는 변증법적 과정인 것이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마르크스,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이병철 변호사(법무법인 찬종)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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