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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애정남'에게 따뜻한 애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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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개콘에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 줄여서 '애정남'이라는 코너가 있었다(이거 알면 아재 인증). 국회의원을 풍자하는 개그를 했다가 강용석 변호사로부터 '너 고소!'를 당한 적이 있는 개그맨 최효종이 애정남으로 분하는 코너였다.


'명절에 오는 지인들의 단체문자에 일일이 답장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생활 속 애매한 질문들에 대해 일응의 기준을 정해주는 과정을 개그로 잘 풀어냈다. 당시 애정남이 정한 기준은 '단체문자라도 맨 앞에 내 이름이 들어가 있으면 답장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였는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통할 것 같은 기준이다.

판사들이 재판에서 하는 일도 생각해보면 애정남과 다르지 않다. 물론 개그 프로그램처럼 "자, 지금부터 딱 정하는 거예요~잉" 한 마디 하고 쾌도난마처럼 바로 결론을 내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선고기일이 낼모렌데 막판까지 애매해서 머리만 쥐어뜯고 있는 사건이 많은 게 현실이다. 특히 2월 정기 인사이동을 앞두고는 오래 묵은 사건이 잔뜩 몰려 있어 '정해주는' 괴로움이 말도 못하게 커진다.

생각지도 않았던 이슈들까지 전부 법원에서 정하라고 가져오는 것 같아 좀 부담스럽기도 하다. 예컨대 수능 정답 확정을 판사에게 맡긴다거나, 방역패스 해제 여부, 대선 후보자 또는 배우자의 사적 대화 녹음을 방송에서 틀지 말지…. 뭐 애매하기는 한데, 이런 것을 판사가 정하는 게 바람직한지는 잘 모르겠다.

결국 정치나 행정이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해 자꾸만 법원으로 그 부담이 몰리는 게 아닐까 싶다. 법원까지 끌고 올 게 아니라, 시민사회에서 적절한 토론을 거쳐 어떻게 할지 합의를 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되는 사안도 많다.

어려운 문제는 점점 더 많아지는데 같이 지혜를 모으면 좋을 것 같은 동료들은 줄줄이 사직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박봉에 고생하면서 욕만 먹는 현실을 생각하면 로펌행을 택한 그들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섭섭한 기분은 어쩔 수 없다. 갈 사람이면 미련 없이 가라. 그럼에도 법대를 지키는 이들은 오늘도 애매한 문제를 풀기 위해 늦게까지 불을 밝힌다. 애정남들에게(아참, 애정녀들에게도…) 부디 따뜻한 애정을.


차기현 판사 (광주지법)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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