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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이직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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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형 로펌에서 젊은 변호사들의 이직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IPO로 자금을 확보한 IT기업들이 공격적으로 변호사들을 채용하고 있는데, 대형 로펌 한 곳에서 회사 한 곳으로만 20명 넘게 옮겨가기도 했다. 법원이나 검찰로의 이직도 많다.


로펌의 7~10년차 쯤 되는 제자들을 만나면 '요즘 젊은 애들'이 너무 쉽게 일을 그만 둬서 큰일이라고들 난리다. 그들의 선배들이 수년 전에 그들에게 똑같은 말을 했던 것을 떠올리며 처음에는 그저 고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팀에 따라서는 입사동기 중 80% 이상이 5년 이내에 로펌을 떠나버리고 경력직으로 들어온 팀원들이 절대다수라고 하니 예전과는 양상이 다름을 깨닫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젊은 세대들이 이른바 '워라밸'을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유력하다. 대형 로펌에서 고객들의 시급한 요구와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다보면, 근로시간이 비교적 일정한 사내변호사의 삶을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IT기업을 중심으로 사내변호사 보수가 대폭 인상되어 대형 로펌과 차이가 적어졌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한다.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집값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대형 로펌의 고액 연봉을 알뜰하게 모아도 쉽게 넘볼 수 없을 만큼 서울의 집값이 폭등하자, 차라리 연봉은 조금 낮더라도 여유 시간에 투자기회를 엿볼 수 있는 일자리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스톡옵션이나 가상자산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는 변호사들도 심심치 않게 거론된다.

로펌 변호사들의 빈번한 이직은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미국의 대형 로펌에서는 입사자의 10~20%만이 6~7년을 버텨 파트너가 되고 나머지는 이런저런 이유로 회사를 떠난다고 했다. 우리처럼 경쟁이 치열한 싱가포르에서는 변호사들 다수가 입사 후 번아웃 증후군을 보이고 휴직·이직을 하는 바람에 4년차 변호사 기근 현상이 심각하다고 들었다.

젊은 세대가 경제적·비경제적 인센티브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이직이 잦다는 것은 로펌에 한정되는 일도 아니다. 세계 최대 기관투자자인 블랙락의 래리 핑크 회장이 올초 주요 기업 CEO들에게 보낸 연두 공개서한에서도 이 점을 지적하며 젊은 근로자들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열심히 지식과 경험을 전수하던 선배들로선 더 나은 조건을 찾아 훌쩍 떠나는 후배들이 야속하겠지만, 이건 전세계적인 큰 흐름인 것이다.

그들의 젊은 선배들은 야속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좋은 삶을 찾아 떠나는 거야 좋지만 하던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고 가니 문제죠." "이직을 결심하면 선배를 대하는 눈빛이 표변하고 태도가 불손해져요. 아주 무섭다니깐요."

예전에는 많은 로펌에서 구성원들에게 '주인의식'을 강조하며 봉사와 노동을 독려해 왔다. 그러나 빈번한 이직과 폭등한 집값 앞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열심히 일하면 멋진 삶을 살게 될 거야"라는 신화의 마취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다만 주인의식이 사라진 자리에 배려 없는 이기심만 남는 것은 슬픈 일이다. 떠날 땐 떠나더라도 프로페셔널리즘, 즉 전문가다운 책임감을 잃지 않고 또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이직열풍을 대하는 성숙한 태도가 아닐까 한다.


천경훈 교수 (서울대 로스쿨)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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