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법조광장

통일법제 업무는 미래사회의 규범화

175748.jpg

사람이 만들어낸 모든 조직은 선진화될수록 규범의 중요성이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적인 문명발전의 수준에 비추어 통일국가는 물론 그것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의 규범의 중요성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습니다. 남북대화는 물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주변 국가들과의 협의 과정에서도 결국 규범화된 합의가 새로운 단계를 추동하는 기반이 될 수밖에 없는 수준입니다.


그동안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정치·군사·외교적 상황에 따라 부침(浮沈)을 거듭해 왔습니다. 그때마다 한반도는 전쟁과 평화의 양 극단을 오가는 불안한 정세에 노출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난 해 1월 법무부장관으로 부임하여 일하면서부터 남북관계에 있어서 이러한 정세의 변동과는 무관하게 꾸준히 진전되고 발전되어 온 분야가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통일법제' 분야 입니다. 법무부는 독일통일의 사례를 통해 통일법제 분야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1992년 통일법 전담부서인 특수법령과(現 통일법무과)를 창설하여, 올해로 30년째 통일법제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통일시대의 전문가 양성과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법률업무는 물론, 우리 정부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따른 평화와 통일의 전 과정에 필요한 법률적 쟁점에 대해 충실히 연구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와 통일국가의 법제화를 담당한다는 의미에서 통일법제 업무는 미래사회의 규범화라고 생각합니다.

남북관계의 법제화와 관련하여 특별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남북이 가장 성공적인 교류협력을 일구어 냈던 개성공단의 사례입니다. 남북은 개성공단의 운영과 관련하여 13개의 합의서와 1개의 부속합의서, 3개의 공동보도문을 채택했습니다. 특히 개성공단의 운영을 위해 북한은 2002년 '개성공업지구법'을 제정하였고, 16개의 하위규정을 추가로 제정하였습니다.

개성공업지구법과 하위 규정의 제정과정에서 남북 법률가들의 협업은 북한의 입법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성과를 낳은 것으로 평가됩니다. 개성공업지구법이 제정된 이후 제정되거나 개정된 북한의 경제개방 관련 법률들을 보면 그 이전과는 편제와 조문의 숫자, 내용의 구체성과 규범 간 위계에 대한 인식이 눈에 띌 만큼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성공업지구에서의 남북교류협력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우리는 2007년 '개성공업지구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습니다. 개성공단 운영을 위한 합의가 남북에서 각 법률의 수준으로 제정되어 운영된 것입니다. 남북이 합의한 사항을 구체적인 문건으로 작성하여 채택하고, 이를 법제화하여 각자 법률체계에 반영한 것은 국제기구 협정의 형태로 추진되었던 대북경수로 사업, 북측의 입법만 이루어진 금강산 관광 사업에 비해 법제적인 측면에서 한 걸음 발전된 시도였습니다.

민감하게 변동되는 남북관계에서 합의 사항을 법률적으로 검토하고 여기에 법률적 효력을 부여하기 위한 절차를 고민하는 것은 다소 더디고 느리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역학관계와 정치상황, 군사적·경제적 상황에 따라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이제까지의 남북관계 환경을 생각할 때,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변개할 수 없는 법률의 언어로 서로의 약속을 공고히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작업이며 가치 있는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남과 북의 관계가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국제정치의 강 위에 법률이라는 징검다리를 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남북 교류협력의 과정은 물론, 남과 북이 하나가 되기를 추구하는 평화의 과정에서 통일법제가 특별히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법무부장관으로 재직하며 여러 법률 현안을 다루어 왔지만, 통일법제 분야야말로 한반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세대가 함께 공존하고 통합의 가치를 실현하는 중요한 법무 영역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미래사회의 규범화를 책임지는 것 또한 법무부장관의 중요한 업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법무부는 '남북 주민 사이의 가족관계와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북한주민 재산관리제도의 개선 방안을 준비하며, 분단으로 훼손된 민족공동체의 회복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상대적으로 연구와 준비가 부족한 남북연합 등 통일 추진의 구체적 단계별 법제 연구에 천착하여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미래사회 규범화 업무를 충실히 해 나가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겨울이 길수록 봄이 아름다운 것이 자연의 섭리입니다. 한반도의 추운 겨울이 모두 지나가고, 3년 전 남과 북이 함께 감격했던 '평화의 봄'이 조속히 다시 찾아오기를 기대합니다.


박범계 장관 (법무부)

리걸에듀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