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월요법창

라곰(Lagom)

175612.jpg

기자와 기자의 연인인 범죄학자가 무참히 살해당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변호사 한 명이 살해당한 사실도 연이어 밝혀졌는데, 경찰은 모든 살인 사건이 동일인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판단하고 신병확보에 나섰으나, 범인으로 지목된 피의자는 어디로 도주하였는지 소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한창 수사가 진행되던 어느 금요일 오후, 수사팀은 피의자의 행적을 추적하는 한편, 살인 동기를 밝히기 위해 기자가 쓰던 원고를 신문사에서 압수수색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부하 형사가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다고 하자 팀장이 대답한다. "이미 늦어진 일이지… 좋아, 오늘은 집에 들어가 주말 잘 보내라고. 월요일부터 새로운 힘으로 다시 시작하자고."


아니 이게 무슨 상황이지? 3건의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피의자를 검거하지도 못했는데, 주말이라고 쉰다고? 정말? 위 장면은 영화로도 만들어진,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이 쓴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라는 소설의 한 대목이다. 스웨덴 유학을 다녀온 동료에게 실제로 가능한 일인지 물어보았다. 동료는 야근하지 않고, 주말에는 일하지 않는 스웨덴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하였다.

최근 덴마크의 휘게(Hygge, 안락함이나 편안함), 스웨덴의 라곰(Lagom,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등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영국 등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정치인들도 복지나 사회정책에서 북유럽을 배우자는 의견들을 많이 내세운다. 당장 벌어진 살인사건을 수사하던 중에도 주말이 왔으니 쉬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여유를 소중히 여기고 삶과 만족, 행복에 있어 절제와 중용을 추구하는 자세는 분명 부럽고 배우고 싶은 것이다.

이 소설에는 검사도 등장한다. 살인사건이 발생한 날 밤 현장에 나갔던 당직검사는 지방검찰청 부장검사를 깨우고, 부장검사는 다시 지방경찰청 부청장을 깨운다. 두 사람은 경험 많은 검사에게 살인사건을 맡기기로 결정한다. 사건을 맡은 검사가 처음으로 한 일은 휴가 중인 고참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복귀하여 수사팀을 꾸리라고 지시한 것이다. 검사는 팀원이 될 형사들도 지명을 한다.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자, 수사팀장은 수시로 사건 진행 상황을 검사에게 보고하고, 수사 계획을 승인받는다. 앞에서 얘기한 압수수색도, 검사에게 보고하고 승낙을 받은 것으로, 스웨덴에서는 실질적으로 검사의 사법경찰관에 대한 수사지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2020년 형사소송법을 개정하여 수사지휘 규정을 폐지하였다. 라곰처럼, 북유럽의 형사사법시스템에서도 배워야 할 게 있지 않을까.


홍완희 부장검사 (대검 마약조직범죄과장)

리걸에듀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