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법조광장

로마 민사소송법 산책 ⑥ 로마법에서의 신의(bona fides)

175568.jpg

1. 앞에서

사람이 사회공동생활의 구성원으로서 서로 상대방의 신뢰를 헛되이 하지 않도록 성의 있게 행동하여야 한다는 원칙, 즉 신의칙은 우리 사회의 한 규범으로 형성되어 있다. 주로 채무의 이행에 관하여 요구되다가 권리의 공공성과 사회성이 강조되면서 민법 제2조에 규정되어 사법(私法) 전체에 적용되었으며 이제는 민사소송법 제1조에도 규정되어 민사소송절차의 중요한 원리가 되었다. 이것은 로마법상의 bona fides를 수용한 것이다. bona fides는 영어로는 'in good faith', 우리말로는 '신의와 성실'로 번역하는데 신의와 성실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동어반복(同語反復)의 조어(造語)라고 할 수 있다.


2. bona fides의 개념

(1) bona fides는 로마에서 신의 지위에 있다. 그 신전은 로마의 카피톨리움 언덕에 세워진 주신(主神) 유피테르의 바로 곁에 위치해 있었다. bona fides는 '인생에서 최고로 신성한 것(sanctissima in vita)', '인간행복의 최고로 확실한 담보(certissimum salutis humanae pignus)'였다. 신은 불멸의 존재인데 신의는 인간들이 존재하는 한 소멸될 수 없는 생활방식이므로 신으로 존칭해도 지나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놀랄 일은 로마인은 신의를 말로만 신으로 칭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신으로 대접했다는 것이다. 로마의 최고정무관으로 하여금 자기가 만든 고시나, 자기가 행한 말에 대하여 구속력을 인정하고 다른 정무관이 한 고시나 말의 소급효를 부정하지 않는 것도 바로 신의에 구속되기 때문이다. 신의를 신으로 받들지 않는 전제군주가 자기의 말을 함부로 뒤집고, 법령을 무시하는 것을 보면 입법자라도 신의를 의무로 하는 위대한 원리를 생각하게 한다.

fides는 고대에서 언어로 책임을 진다는 것과, 언어를 지킨다는 것, 즉 입으로 말한 것을 실행한다는 것으로 정의된다. 로마인은 그들의 신의를 과시하여 '카르타코의 신의'나, '그리스인의 신의'와 대비하여 이를 자랑하였다. 신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그들의 처세훈(處世訓)의 하나였다. 물론 그들도 때로는 신의위반의 죄를 범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에 의하여 이 격률(格律)의 존재가 요동하는 일은 별로 없어서 법규범의 존재가 그 위배에 의하여 손상을 입는 것이 아니다. 로마인은 실제로 진솔하게 신의를 추구하였다. 신의가 결여되는 것은 그들로서는 사회적 오점이었다. 그것은 신의가 로마인에게 있어서 인간의 중심적 덕(德)이라고 생각하고 지내야 하며, 진로를 결정하기 때문에 이것을 반드시 관통하여야 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2)
준법정신(遵法精神)이란 법에 대한 신뢰, 안정감, 법의 일관된 실현을 할 충동의 도덕적 내면적 배경이 되는 것이다. 법으로서 일단 정립된 이상 그것은 단지 법이라는 이유에서 준수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승낙하고 스스로 나아가서 법에 복종하는 내면적 자발정신이 나온 것이다. 이 정신은 어린아이로부터 어른까지 함양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내면적 자발성의 덕(德)은, 신의(fides)의 덕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신의라 함은 '말한 것을 행하는 것'(fit quod dicitur)이고,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이 덕은 국가권력이 법을 지켜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 개인이 법을 지켜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 개인이 계약을 지키는 것과 관련된다. 그것은 형식 논리로서 증명할 수 있다. 생각건대 법률(lex)이라 함은 본래 명령권을 행사하는 정무관이 제안하고, 국민이 이를 승낙하는 형식을 취하는, 정무관과 국민 사이에 맺은 협약이고, 약속이므로 약속한 정무관과 국민을 구속한다. 따라서 준법은 개인들이 서로 계약을 준수하는 것과 동일하게, 신의의 덕에 합치한다. 로마인은 그 신의의 덕을 자랑하고, 로마인의 신의를 카르타고인, 그리스인의 신의와 대립시킨다. 로마인은 바로 '신의라는 이름을 항상 입에 달고 사는 인간'이라고 한다.


3. bona fides의 발현
(1) 법원(法源)이론의 영역
(가)
고시(告示)를 공포한 정무관은, 스스로 공포한 그 고시에 구속된다, 즉, 정무관이 쓴 것은 정무관 자신의 의사에 기한 것이라고 하는 원칙이다.

(나)
법규범은 소급효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다. 당초, 자기가 공포한 고시는 자기 스스로 지켜야하는 법적의무가 정무관에게는 존재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정무관은, 그 신의의 요청에서 자기가 한 약속에 구속되고, 그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그 약속을 신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무관이 이 신의를 깬다면, 로마에서는, 통례적으로 시민들은 이의권(interessio)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한편, 고시·법률·원로원의결·칙법 어느 것에 기초하든, 법규범은 그 본래의 효과가 생기므로 이를 뒤집는 소급효가 인정되지 아니하였다. 이는 신의의 요청이다. 입법자들은 신의를 의무로 하는 위대한 원리를 공화정시대에 이미 발전시켰다. 물론 그것은 법원칙은 아니다. 왜냐하면, 입법자가 이 정도까지 자기를 구속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로마인에 의하여 고수된 원칙이었다. 민사법의 경우에 키케로는 비 소급효의 원리를 예외 없이 완벽하게 이루기를 희망하였다. 물론, 제정시대는 여기에 몇 개의 예외가 보인다. 그러나 그 수는 많지 않고 대부분은 고전이후의 시대의 것으로서 그 원리 자체에 동요는 없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도, 의연하게 그 원리를 강조하였다.

(2) 무방식의 법률행위

이는 로마의 초창기부터 승인되었다. 비록 어떤 형식으로 표명되더라도 스스로 한 말을 지켜야하는 신의가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매매·임대차·조합·위임이라고 하는 4개의 낙성계약은 이미 공화정시대에 알려졌다. 낙성 매매계약은, 놀랍게도 이미 기원전 2세기에 존재하였다고 생각된다. 마찬가지로, 소비대차(mutuum)·임치(deposition)·사용대차( commodatum)도, 이미 공화정시대에는 무 방식의 요물계약으로서 승인되었다. 무 방식의 면제계약은 극히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고, 무 방식의 지급 유예계약은 이미 기원전 2세기에 알려졌다. 동일하게, 변제약속, 은행업자·중재자·선주·여관주의 인수(引受)에서, 이른바 법무관법상 소구 가능한 합의(pacta practoria)도 또한 이미 공화정시대에 알려졌다. 자유 혼인에서 무 방식의 혼인체결도 마찬가지다.

(3) 유효한 채권계약

여기에서도 엄격한 구속성이 발생된다. 하나의 계약이 완성되면 구속력을 갖는 것으로서 계약에서 혼자만의 이탈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이 원리가 최고로 명료하게 나타난 것은 매매의 경우이다. 계약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법정해제권은, 로마법은 알지 못하였다. 로마인의 그 태도는, 이러한 법정해제권이 헬레니즘 법에서는 알려졌지만, 해제를 구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해제권은 황제에 대한 청원 중에 청원자에 의하여 반복하여 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황제의 칙령은, 이러한 해제권을부인하고, 청구자에게 계약의 이행청구권의 실행을 지시하는 것뿐이었다. 임대차의 경우를 보면, 법정의 해약고지기간을 준수할 무렵에는 해약고지가 인정된다고 하는,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임대차 계약은, 로마의 법 생활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아니하였다. 사람들은 일정한 기한부 임대차계약을 맺은 것이다. 로마법대전(Corpus iuris)가운데에는 계약침해를 이유로 한 해약고지권이 존재한다. 그러나 상세하게 검토하면 아무래도 해약고지권이라는 것은 고전후에 고쳐진 것이 명백하다.

(4) 계속적 신의관계

(가) 피해방자유인과 그 보호자와의 신의관계 여기에는 상세한 법적 규제가 있다. 피해방자유인의 공겸의무(reverentia)나 공순의무(obsequium)에서 재산법이냐 비재산법이냐를 묻지 않고 넘칠 정도로 의무가 생긴다. 보호자 측으로서는 피해방자에 대한 보호나 원조의 책임을 부담한다. 물론, 이 관계의 이러한 측면이 당연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측면과 비교하여 법적으로는 명확한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나)
보호자와 피호민(被護民)의 신의관계 역시 비 법적인 신의관계였다. 어느 하나의 공동체가 어느 한사람 보호자의 비호(庇護)단체로 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관계는, 지방자체단체와 그 공동체를 로마제국을 운영하는 정치가와의 사이에서 구축하는 것이 통례였다. 이 신의관계는, 상속 가능하였고, 서로 지원할 의무가 있다. 예컨대, 보호자는 피호민에게 불리한 증인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공동체의 보호자는, 이 비호 공동체의 이익을 로마에서는 힘의 범위에서 옹호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놀랍게도, 보호자는 또, 절충하여, 원로원에게 이 공동체를 위한 도시법의 기초를 위탁하기도 하고, 혹은 중재판단의 재정(裁定)을 위촉하기도 하였다.


강현중 고문(법무법인(유) 에이펙스·전 사법정책연구원장)

관련 법조인

한 주간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