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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행정지도에 대한 법적 통제 필요하다

금융위원회가 2017년 말 은행의 가상통화 거래소에 대한 가상계좌 서비스의 신규 제공 중단 및 가상통화 거래 실명 조치를 전격 발표한 지 4년 만에 헌법재판소가 5:4로 그 위헌심판청구에 대한 각하결정을 내렸다. 위 조치는 금융기관들의 자발적 순응을 상정한 가이드라인에 지나지 않고, 이를 따르지 않는 은행들에게 행정상·재정상 불이익이 따를 것이라는 내용도 확인할 수 없으므로, 결국 위 조치가 당국의 우월적인 지위에 따라 일방적으로 강제된 것으로 볼 수 없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논거다.

강제성을 띠지 않은 비권력적 사실행위로서의 행정지도는 헌법소원 또는 행정쟁송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학설과 판례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행정상 사실행위가 강제성을 띠는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위 헌법재판소 결정에서도 무려 4인의 재판관이 반대의견을 냈다. 비록 조치 불응 시 어떠한 제재가 따를 것인지가 명문으로 공표되지 않았더라도, 금융당국은 은행에 대한 일반적인 관리감독권에 기하여 순응하지 않는 은행에 대해 추상적인 의무위반사항을 상정하여 각종 제재처분을 가할 수 있고, 이를 적극적으로 다투기 어려운 은행들로서는 조치를 이행할 수밖에 없으므로, 위 조치는 단순한 행정지도로서의 한계를 넘어 규제적·구속적 성격을 상당히 강하게 갖는 공권력의 행사라는 것이다. 또 금융서비스의 중단이나 실명 금융거래정보의 공개는 직접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므로 법적 근거 없는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법률에 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은행들은 정상적으로 가상통화 거래소에 대한 신규계좌 발급영업을 해 오던 중 위 조치가 발표되자 예외 없이 가상통화 거래소에 대한 신규계좌 개설을 중단해야 했다. 이를 두고 아무 강제력 없는 가이드라인이었다거나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순응한 것이었을 뿐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거래현실을 도외시한 탁상공론일 따름이다.

국민 다수의 권리의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조치가 행정지도라는 미명 하에 법적 근거 없이 행해진 사례는 그밖에도 많다. 그 대표적인 것이 2019년 12월 16일자로 행해진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 내 15억 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규제 및 2020년 6월 17일의 추가적인 대출 규제다. 정부 발표에 의해 그 직전까지 정상적으로 행해지던 대출이 갑자기 규제됨으로써 다수가 피해를 입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행정지도는 명시적인 법적 근거 없이 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불복도 쉽지 않다는 점에서 행정당국에게는 매력적인 정책수단이다. 그러나 국민의 권리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대하여 입법이라는 정공법을 피해 법적 근거 없이 행정지도의 명목으로 규제를 남발할 경우, 국민들은 행정지도에 따르지 않을 수도 없고 헌법소원이나 행정쟁송으로 다툴 수도 없어 결국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사법부가 행정지도에 대하여 형식논리를 버리고 적극적인 법적 통제에 나서야 한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