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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正義)가 공짜인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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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주 첫 여성 변호사 클라라 폴츠.


그녀는 1893년 시카고 월드페어 행사에서 미국 역사상 최초로 "정부가 검사를 고용하듯이 변호사를 공무원으로 고용하여 가난한 피의자·피고인을 변호해줘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정부가 고용하는 변호사를 퍼블릭 디펜더(공적 변호인)라고 불렀다. 퍼블릭 프로써큐터(검사)와 대등한 지위에 있다는 뜻에서 디펜더(변호인) 앞에 '퍼블릭'을 붙인 것이다. 이렇게 퍼블릭 디펜더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그 당시에는 진보적인 뉴욕 타임즈마저도 이러한 클라라 폴츠의 생각을 '어느 여성 변호사의 터무니없고 이상한 프로젝트'라고 조롱했다. 하지만 그 후 퍼블릭 디펜더 제도는 미국의 각 주에서 도입되기 시작하여 검찰청에 대응하여 설치되는 변호청으로 발전한다. 현재 연방 변호청은 사법부 소속 독립기관으로, 주 단위 변호청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검찰이나 법무부와는 별도의 독립기관으로 각각 설치되어 있고, 예산과 조직도 검찰과 대등하게 배려된다.

필자가 2003년에 만난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 변호청장의 설명에 의하면, 변호청 소속 변호사들의 처우와 신분보장은 연방 검사와 대등하게 정해져 있어서 연방 검사의 보수가 올라가면 자신들의 보수도 연동하여 올라간다고 한다. 검찰청에 대응하는 변호청의 위상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퍼블릭 디펜더 제도를 모델로 하는 국선전담변호사 제도가 2004년 9월 처음 시행됐다. 당시 11명에 불과했던 국선전담변호사는 올해 234명이 활동 중이고, 그동안 국선전담변호사들의 활동에 힘입어 국선변호의 질적 수준도 향상되었다. 국선전담변호사는 이제 젊은 법조인들이 선호하는 직종이 됐지만 그 지위는 법원으로부터 배정받는 국선변호 사건을 전담하여 처리하는 일종의 계약직에 머물러 있다. 만일 국선전담변호사가 미국의 변호청 소속 변호사처럼 처우와 신분을 제도적으로 보장받는다면 더욱 충실한 국선변호가 가능할 것이다.

클라라 폴츠는 "자랑스럽게도 정의가 공짜인 나라에서는 그 누구도 정의를 돈 주고 살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범죄자를 단죄하는 것뿐 아니라 가난해서 억울한 피고인이 없게 하는 것도 형사절차에서의 정의(正義)다. 국선전담변호사 제도가 시행된 지 17년이 넘은 이 시점에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의가 공짜인가?"


정준영 부장판사(서울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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