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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민소소송법산책 ⑤ 로마법에서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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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마에서의 자유

John Locke는 말했다. "법이 없는 곳에는 자유도 없다"(대런 애스무글루·제임스 A 로빈슨 공저 '좁은 회랑' 2020년, 25면). 로마에서 법이 발전한 이유가 자유에 있다는 것은 이 한마디로 알 수 있다.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동양에서는 선이 인간의 본질이므로 악을 제어하기 위해서 법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로마인은 자유가 인간의 본질이라고 하여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법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1902년 제1회 노벨문학상 수상자 Theodor Mommsen에 의하면 로마인은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여러 인종 가운데서 비교적 누구의 강압적인 지배나 또 강압을 행하지 않고 로마지역에 정착한 인종이라고 한다. 그들은 숫자도 둘 이상 잘 셀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이지만,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자유를 지키고 수호하는 것이 첫 번째라고 깨달은 인종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자유라고 하는 사상을 발견한 것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사실의 발견보다도 한 층 곤란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역사가 발견자의 이름을 잊은 것이 아니다. 정신계의 위대한 발견은 결정된 특정 개인에게 귀착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격투와 사색, 또 천천히 성숙한 성과이기 때문이다(예링, 로마법의 정신 1권(1) 152면).

 
로마에서 자유는 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 자유를 실현하는 장이 정치이고, 정치를 뒷받침하는 제도가 재판제도이다. 재판은 정치시스템의 '기초가 파괴되는 경우'에 대처하는 결정을 한다. 정치시스템이 작동할 수 없는 파괴된 상태를 다시 파괴하여 회복시켜야 하기 때문에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재판은 외적에 대한 군사편성과 유사하다. 로마에서 군의 최고지휘자인 집정관이나 법무관이 재판을 담당하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2. 로마 자유의 본질 및 한계

로마의 자유 개념은 한계가 내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로마에서는 자유의 원리가 법형성의 원리가 된다. 로마인으로서 자유라 함은 자기가 의욕한 것을 행할 능력, 혹은 행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능력, 자기 생각대로 생활할 능력이 결코 아니다. 로마인으로서 자유가 없는 자는 주인, 즉 dominus를 모시고 있는 자이다, 즉 그를 지배하는 지배관계에서 그에게는 일체의 결정권이 없는, 그러한 주인을 갖고 있는 자이다. 그러한 dominus를 가진 자만 부자유한 것이다. 따라서 개인에 관해서 말한다면, 그가 노예라면 자유는 없다. 국민 전체에 관해서 말한다면 그 정점에 절대군주가 군림하든가, 혹은 다른 나라의 전제정치적 지배에 복속한다면 자유는 없다. 그러나 그 의미의 '주인, 즉 dominus'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유(libertas)는 그 정도가 다소 다르더라도 개인이냐 국민전체냐를 묻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원전 1세기에 국가재건을 위한 명목으로, 종신 임기의 독재관이 되어 로마를 지배하였던 Sulla가 국가의 정점에서 군림하였더라도 로마는 '자유로운 국가(libera res publica)'로서 존재하였다. 로마 제정(帝政)도 전주정(專主政)을 제외하고서는 자유로운 공동체였다. 전제정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아우구스투스는 그의 업적록(res gestae)중에서, 자기는 도당(徒黨)의 전정적(專政的)지배로 압박을 받은 국가에게 자유를 돌려주었다고 과시하였다.

 

로마의 자유라 함은 진실로 로마적인 개념이다. 즉, 명석하며, 애매하지 않고, 실제적으로도, 법적으로도, 놀랄 정도로 실무적이다. 이 자유는, 로마인이 그들 최고의 재산이라고 칭찬한 것으로서 그들은 실로 오랜 시간에 걸쳐 강인하고 완강하게 이를 보유하였다. 그들은 자유에의 지향 그 자체가 그들의 국민적 특질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동부 오리엔트의 군주들과 전쟁 중에도 자신들을 자유의 전사라고 생각하였다.


3. "인간 자유의 첫째 징후는 타인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다."

경제적·정치적 관점에서 본다면, 로마의 자유는 종종 그 이전 군주의 전제정치(dominatio)에 뒤떨어지지 않는 압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의 민족'에서 그 상위(相違)는 명백한데, 그것은 자유인의 경제상태가 경우에 따라 노예와 동일하게 열악하든가, 혹은 노예보다도 열악하더라도, 자유로운 노동자와 노예가 서로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다. 로마인은 다른 나라와 민족을 정복하더라도 그들에게 자유를 줌으로써 로마의 자유를 과시하였다. 로마인이 정복하여 다스리더라도 이를 자유로운 공동체(civitates liberae)라고 칭하였는데 이 공동체는, 비록 그 자유(libertas)가 제한을 받더라도, 그것이 정치적으로 종속하는 것이 명백하더라도, 로마인의 생각은 자유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공동체는, 속주장관에 의한 지배를 받더라도, 고유의 영토에서 재정자치권을 포함한 고유의 자치권을 갖는다. 이 공동체(civitas)와 로마와의 의견 차이는, 원로원에서 절충을 통하여 처리된다. 이것이 로마인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것은 국제법상 주권의 결여라고도 좋고, 또 로마는 그 공동체에 부과된 병력·금전·재물을 갹출할 수 있지만 변함이 없는 자유이다. 속주장관의 지배에 속하여, 로마에 복속하는 공동체라고 하더라도, 로마인은 이를 절대군주정의형태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공동체는, 전문적 의미에서 '자유로운 공동체(civitates liberae)'는 아니다. 그러나 사실상, 자기 고유의 영토, 자기 고유의 법, 자기 고유의 행정을 보유한다. 그러나 속주장관의 끊임없는 감시, 속주장관의 간섭 가능성을 피할 수 없다. 다만, 이 공동체가 스스로를 자유라고 느끼고, 또 스스로 자유라고 칭한다는 데 특징이 있다.


4. 결론

현재 로마시의 캐피탈리노 언덕과 그 우측의 팔라티누스 언덕 그리고 그 사이의 포로 로마가 위대한 로마의 탄생지이다. 전설에 의하면 로마의 창시자인 로물루스와 쌍둥이 형제 레누스는 그곳 통치자의 딸이 불륜의 결과로 출산한 후 불명예를 모면하고자 들판에 내버렸는데 늑대가 젖을 먹여서 길렀고, 그들이 성장하여 로마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그 전설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로마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건설하였다는 것이다. 몸젠의 로마사 1권을 보면 그 당시 로마에서는 창녀를 늑대라고 불렀다고 하니 창시자 로물루스의 혈통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그곳의 거주자는 약 1만 명 정도이고 면적은 1600㎢로서 매우 작은 지역의 적은 인구였던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곳 거주 로마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그곳을 지켜냈다. 그 방법은 요즘말로 치면 전 주민의 자발적인 지원에 의한 지원병제도에 의해서였는데 지원자는 모두 성년남자로서 여자와 어린아이는 방어능력이 없어 제외되었고, 또 스스로 무기를 장만할 수 없는 프롤레타리아, 즉 무산자나 그 당시 법으로는 인간취급을 받지 못한 노예도 제외하고, 나머지 자유인들이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면서 로마를 지키고 또 영역을 확장하였던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 생래의 본질인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자유수호의 의지가 없었더라면 당시 그곳의 강자인 에트루리아의 노예가 되어서 자유 없는 평안한 생활을 누렸을 것인데 이들이 이를 거부하고 생명을 거는 전쟁을 감당한 것은 자유에 대한 의지 때문이었다.

 
당시는 성년 남자들이 앞에서 제외된 사람을 빼고는 모두가 전쟁에 참여하는 관계여서 그들 사이의 귀족이나 평민이라는 신분상 구별은 부차적인 것이고, 모두 생명을 거는 동지였기 때문에 군대 내에서는 그들의 의사와 관계없는 어떤 강자의 강압에도 의존하지 않았다. 로마는 공화정 중기까지 지원병제도와 문(文)·군(軍)일치의 체제를 유지하였는데 여기서 집정관 등 통치자는 그 구성원들이 뽑아서 이들이 로마 정치체제의 근간이 되었다. 여기서 전투에 참가하지 않은 여자, 어린아이, 무산자 및 노예는 정치체제의 구성원에서 제외되었는데 그들은 생명을 거는 전투에 참가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제외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 그러므로 로마에서는 자유의 원리가 평등의 원리에 앞섰다. 이점이 그리스의 아테네와 차이점이다. 아테네에서는 무산자로서 전투에 참가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투표권을 인정하였다. 어느 제도가 우수하였는가는 로마와 아테네의 그 후 운명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로마인의 자유는 영어로 freedom이 아니라 liberty였다. 모든 것을 제한 없이 행사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국가를 방위하기 위한 규율에 복종하여야 하는, 다만 주인(dominus)을 모시고 그에 의해서 지배를 받지 않는 의미의 자유였다.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제국을 건설하였을 때에도 dominus라고 하지 않고 시민의 제1인자(princeps)라고 하여서 형식적으로라도 시민의 의사에 기초한 통치체제를 유지하였다. 로마제국이 야만족의 침입에 의하여 국가가 흔들릴 때부터 전주정이 실시되었는데 그 이전까지 로마제국의 통치자는 세습되지 아니하고 형식적으로나마 원로원의 추대를 받아서 지위를 계승하였다. 가족 내의 승계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이후였다. 그 이전 로마제국의 황제는 오늘날 로마 교황의 지위와 아주 유사하였다.


로마는 시민이 참여하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본질로 하는 체제였고, 이 체제를 유지하는 근간이 로마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강현중 고문 (법무법인(유) 에이펙스·전 사법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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