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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이유 없는 판결은 판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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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은 판결문으로 말한다"는 법률격언이 있다. 판결이유는 결론에 이른 법적 추론 과정의 표출을 통하여 분쟁 당사자를 구속하거나 설득하는 권위(authority)를 갖는다.그런데 '소액사건심판법'과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의 규정에 터잡은 이유기재가 없는 판결문으로 인해 법원의 권위 실추와 사법 불신이 초래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유 없는 판결은 사법의 야만성과 후진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대법원은 2017년 1월부터 소송 목적의 값이 3000만원을 초과하지 않는 사건을 소액사건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 금액이 소액인지도 의문이지만, 법률로 정해야 할 의회유보사항임에도 대법원규칙인 '소액사건심판규칙'에서 소액사건의 범위를 정하도록 위임한 국회도 문제이다. 독일과 일본은 법률에서 그 금액을 정하고 있으며, 독일은 750 유로(약 1000만원), 일본은 간이법원이 관할하는 사건은 소가가 140만엔(약 1400만원) 이하의 사건이지만 소액소송은 60만엔(약 620만원)이하의 금전지급청구를 목적으로 하는 소에 한정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당의 국회의원이 발의한 '소액사건심판법' 개정안 중 소액사건에서 판결서에는 이유를 기재하지 아니할 수 있는 조항을 삭제하는 안과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판결이유를 기재하도록 하는 안을 심도 있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판결이유의 기재를 생략할 수 있는 조항의 삭제나 원칙적으로 판결이유를 기재하도록 할 경우 제1심 법관의 업무량 급증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액사건의 경우 필요적 조정전치주의 도입과 민간형 조정기구의 설치 등 법원의 업무부담을 획기적으로 경감하는 방안을 함께 연계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 헌법은 제1조 제2항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소송물 가액 3000만원 이하인 민사사건에서 판결이유를 기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정녕 국민을 위한 것인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법원에서 패소 판결을 받은 당사자가 이에 불복하여 다투려면 판결 이유를 알아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사법절차에 속하는 재판은 결론만 도출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법을 적용하고 해석하여 올바른 법이 무엇인가를 선언하고 발견하는 과정인 것이다. 당사자가 그 이유도 제대로 알 수 없는 판결을 법원의 재판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따라서 앞으로 '소액사건심판법'에서 소액사건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당사자가 간이절차를 선택하는 경우에는 단심으로 종결하는 방안을 강구하여 상급법원의 사건처리 부담을 경감할 필요가 있다.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의한 심리불속행으로 이유 없이 상당수의 사건이 종결되는 것을 생각하면 대법관은 특정 사건에서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부수적 의견인 방론(傍論, obiter dicta)의 작성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은 제1심 법원과 제2심 법원의 판결의 결론이 다른 경우 국민의 알권리 측면에서 어느 판결이 타당한지 주된 판결이유(ratio decidendi)를 제시하여 판결의 결과에 승복하는 문화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김용섭 교수 (전북대 로스쿨)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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