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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회스타그램

[#지방회스타그램] '제주 변호사의 일상기록'

제주에서 나고 자라 제주에서 변호사로 활동
초심 잏고 살아온 것 아닌지 문득 두려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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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제주는 바람, 돌, 여자가 많다고 해서 삼다(三多)의 섬으로 불려왔다. 제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단어가 되었지만 척박하고 고단했던 옛 제주 사람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꽤나 고달픈 의미가 담겨 있는 그런 표현이기도 하다. 땅을 파면 나오는 것은 크고 작은 돌뿐이고(지금도 제주도에서는 건축 공사 터파기 과정에서 예상치 못하게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나와 공사가 지연되는 문제로 다툼이 생기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제주의 바람은 쉼을 기약하지 않고 무섭도록 휘몰아친다. 기분 좋게 선잠이나 들게 하는 그런 류의 바람이 아니다. 무엇 하나 쉬이 이루어나갈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러한 척박한 환경에서 농사를 짓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을 터이다.

물이 귀했기 때문에 용천수가 솟는 해안가 주변으로 자연스레 부락이 형성되었다. 지금에서야 워낙 개발 붐이 일어 제주도 이곳저곳 사람 사는 집이 지어지지 않은 곳이 없다지만 옛 제주 어른들은 중산간 지역은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사방이 바다인 섬에서 남자들의 주업은 뱃일이었다. 나침반도, 일기예보도 없던 시절 별자리를 나침반 삼았을 것이고 오랜 경험에 기대어 내일의 날씨를 짐작하였을 것이다. 그것이 오롯이 다 맞아떨어질 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뱃일을 나섰다가 풍랑을 만나 생사조차 알 길이 없게 된 남자들이 마을마다 적지 않았다. 여자가 많게 된 것은 남자가 적어진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옛 제주 남자들은 하루하루 죽음과 맞닿은 삶을 살았다. 언제 떠나갈지 모르는 운명들이었기 때문에 그랬을까. 뱃일을 나가지 않는 날에는 비교적 좋은 대접을 받았던 듯하다. 집안일과 육아, 심지어 밭일조차도 여자들의 몫이 되었다. 그 대접의 흔적이 대물림 되어 제주 남자들은 다소 게으르다는 인식이 생겨났다(다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나도 제주에서 나고 자란 남자다.

게으름의 DNA를 물려받은 탓인지 나는 변호사를 천직으로 삼기에 많이 부족한 감이 있다. 매순간 쉴 틈을 허락하지 않고 긴장을 해야만 하는 업이기 때문에 적성에 맞지 않게 참 바쁘게도 살아왔다. 누군가의 짐을 나눠서 짊어져야 하는 길임을 느끼게 될 때도 많다. 혹여 나로 인해 어떤 이가 좋지 못한 기억을 품고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나와의 만남이 악연으로 남게 된 것이 아닐까, 초심을 잃고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아니, 초심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기는 한 것일까), 이러한 두려움이 문득 밀려올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이제는 그 모든 게 숙명이려니 받아드린다. 올 한 해를 시작하며 품었던 꿈은 참으로 원대했건만 변변히 이룬 것도 없이 어느덧 끝자락에 와있다. 실속도 없이 바쁘게만 살아온 것은 아닌지 문득 서글퍼지기도 한다. 이제부터는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고 돌아오는 또 다른 한 해를 알차게 계획할 때이다. 돌아오는 2022년에는 생각지도 못한 재밌는 일들이 찾아올지도 모르니 말이다. 어쨌든, 지금 당장에 가장 큰 희망은 곧 다가올 겨울 휴정기이다.


김용학 변호사 (제주회)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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