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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프리즘

마감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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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소장이나 답변서, 준비서면 같은 법률서면도, 일기나 짧은 에세이도, 그리고 이렇게 칼럼을 쓰는 것도 좋아한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나 정서를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그 과정 자체가 즐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매번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은 어렵다. 좀 더 미리 써두면 좋을 텐데, 매번 마감에 임박해서야 키보드를 잡게 된다.


글을 쓸 때마다 매번 깨닫는다. 더 오래 붙잡고 있다고 해서 더 좋은 글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초고를 쓰기 전에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 초고를 쓰는 시간, 그리고 한 두 번 퇴고를 할 시간을 가지면 족하다. 작업 자체에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작업을 시작하기까지 마음을 다잡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 뿐이다.

이렇게 글쓰기에 착수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건 아마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인 듯하다. 현재의 내 실력보다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앞선다. 칼럼을 쓸 때는 기라성 같은 법조선배님들의 칼럼에서 느껴지는 사고의 깊이, 명문장을 쓰는 능력이 내게는 부족한 게 아쉽다. 서면을 쓸 때는 유리하게 주장할 만한 사실관계가 없는 것이, 딱 들어맞는 판례가 없는 것이 아쉽다. 쓰고 나서도 스스로 만족이 안 될까 봐, 내자신조차도 설득하지 못하는 글이 나올까 봐 쓰는 것 자체가 망설여질 때가 있다.

이럴 때 특효약이 바로 마감이다. 마감이 다가오면 어떻게든 글이 써진다. 마감 전날이 되면, 리서치를 더 하고 싶은 마음, 글을 갈아엎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다스려진다. 지금의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어떻게든 잘 마무리 지어 제출하겠다는 것으로 마음가짐이 바뀐다.

가끔 사건을 진행하면서 동병상련을 느낄 때가 있다. 재판부에서 서면을 좀 미리미리 내달라고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상대방 소송대리인도 다음 기일 3일 전에야 부랴부랴 제출할 때. 일이 많이 바쁘기도 했을 것이다. 또 더 잘 쓰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진행 중인 민사소송에서 피고 측 소송대리인이 형식적 답변서만 제출하고 준비서면을 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도 곧 준비서면을 제출할 것이다. 기일이 잡혔으니까. 마감이 글을 쓰는 법이니까.


김화령 변호사 (서울회)

리걸에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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