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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회스타그램

[#지방회스타그램] 출퇴근길 자랑질

상쾌한 출근길에 못지않은 평화로운 퇴근길
서울중심주의를 벗어나 누리는 일상의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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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수원법조타운에 있는 사무실까지 약 4km 떨어져 있다. 차를 운전해 출퇴근하는 날도 있지만, 주로 걷거나 공유자전거를 타고 다닌다(수원의 공유자전거 '타조'는 자전거 거치대가 아니더라도 사람들 눈에 잘 띄고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 곳이면 어디든 세울 수 있어 서울의 '따릉이'보다 훨씬 더 편리하다). 걸으면 50분, 자전거로만 가면 20분 안팎의 거리인데, 날씨에 따라 또 기분에 따라 쭉 걷거나 쭉 자전거로 이동하기도 하고, 걷다가 자전거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다 걷기도 한다.

  

출근길은 아파트 옆 천변로에서부터 시작된다. 현관을 나서자마자 타조가 보이면(아파트에 타조 이용자들이 많은지 그런 날이 꽤 있다) 마치 나를 위해 기사가 대기하고 있는 것 같아 우쭐해진다. 실개천 양 옆으로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자전거로 10분 정도 가면 널찍한 신도시 호수공원이 펼쳐진다. 과거에는 저수지가 있던 곳이라던데, 광교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멋진 호수공원으로 변신했다. 호수에 바로 인접한 길은 호수를 보면서 갈 수 있어 좋고, 호수가 안 보이는 공원 안쪽 길은 호젓해서 좋다. 어떤 길을 택하든 중간 지점에서 가파른 오르막길은 피할 수는 없다. 여기가 고비다. 걷는 사람들보다 더 느린 속도로 자전거를 타고 헉헉거리며 간신히 지난다. 짧은 오르막길이 끝나면 긴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자전거를 탈 때 이 지점이 가장 신난다. 바람을 가로지르며 달린 후 조금만 더 페달을 밟으면 이윽고 법원·검찰청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완만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한 번만 더 반복하면 호수공원 끝이 보이고 그제야 차도가 시작된다. 출근길 4km 중에 차도를 지나는 구간은 법원·검찰청 앞 횡단보도부터인데 거기서 사무실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차도를 만나지 않아서 신선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는 출근길은 그날 처리해야 할 골치 아픈 사건들로부터 긴장을 풀어준다. 차를 타고 다니면 '어느새' 계절이 변해 있지만,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 '점진적으로' 변하는 계절을 만끽할 수 있다. 가냘픈 봉우리에서 꽃이 피어나는 신비, 여린 연두색이 점점 진해지면서 진한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과정은 볼 때마다 새롭다. 초록색 잎들이 두꺼워지고 커지면서 신록의 그늘을 만들어내는 여름, 울긋불긋 물이 드는 가을, 그리고 나무들이 다 잎을 떨궈내는 겨울의 변화를 매일매일 찬찬히 조금씩 따라간다.

 
퇴근길도 출근길 못지않다. 요즘은 해가 일찍 져서 퇴근시간이면 이미 어둡지만,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저녁노을, 혹은 어스름해지는 분위기를 만끽하며 퇴근했다. 출근길이 상쾌하다면, 퇴근길은 평화롭다. 특히 퇴근시간 대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이 있어 그걸 꼭 듣는데, 귀에 낮게 깔리는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공원을 지나면 세상이 음악처럼 너무 아름다워 보여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조금 전까지 사무실에서 서면에 썼던, 다투고 속이고 폭력과 방임과 증오가 난무하는 세상이 과연 있는가 싶을 정도다.

 
이렇게 멋진 출퇴근길을 갖게 된 건 역설적이게도 사무실과 집을 이어주는 대중교통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수원에 연고가 없던 나는 처음에 구(舊) 법원 가까운 곳에 집을 얻었는데, 몇 년 전 법원이 이사하면서 집과 상당히 멀어지게 되었다. 새로 만들어진 법조타운은 수원의 동쪽 끄트머리에 있다. 서울 강남에서 오기 편리한 위치이지만, 대부분의 수원 사람들에겐 교통접근성이 떨어진다. 집에서 사무실로 가는 버스가 딱 한 대 있는데(물론 지하철은 없다), 배차 간격이 20분이다. 사무실에서 걸어서 갈 만한 거리로 이사를 하고 싶었지만 수원에서 가장 비싼 동네라 감히 엄두도 못 냈다. 4km는 걷기엔 좀 멀다 싶어 한참을 차를 운전해 다니다 어느 날 운동 삼아 걸어서 출근을 해 봤더니 차도를 지나지 않는 구간이라 그런지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다. 호수공원 내 온갖 길을 섭렵하고 있을 무렵 공유자전거 타조가 생겨 선택지가 넓어지게 된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출퇴근길을 자랑하고 있지만, 처음 수원에 오게 되었을 땐 이런 삶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서울 서초동에서 일하다 수원으로 왔을 때는 법조계의 중심을 벗어나 변방으로 밀려난 것 같은, 뭔가 뒤처진 느낌과 당혹감이 없지 않았다. 서초동 터줏대감도 아니고 새내기 법조인으로 고작 2년을 그 곳에 있었을 뿐인데도 말이다. 참 어리석었던 생각이지만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고질적인 서울중심주의에서 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지방으로 이동을 앞두고 그때의 나처럼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서울을 벗어난 삶에 어떤 보석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고. 그러니 망설이지 말라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저의 자랑에 배가 아프신 독자분이 계신다면 정중히 사과드리며 자랑질 끝.

 

 

정혜진 변호사(경기중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