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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惡人 옆 변호인'은 법치주의의 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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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사기 사건의 피고인이 명품 양복을 차려입은 사선 변호인단을 대동하고 나타난다. 일순간 법정에 긴장감이 감돈다. 이튿날부터 피해자들의 탄원서가 줄줄이 기록에 와서 붙는다. "피 같은 우리 돈을 가져다 비싼 변호사를 '사서' 빠져나가려고 하다니, 분통 터진다"는 것.


실제로 억울하게 돈을 편취당한 피해자들이라면 심정적으로 그 울분이 이해는 간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이들에게 헌법상 보장되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이야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특히 재판을 질질 끌어 피해자들 스스로 지쳐 나가떨어지게 하려는 작전을 세운 것으로 짐작되는 피고인을 보면 표정관리가 안될 때도 많다. 매번 새로운 변호인을 데리고 와서 "아직 변론 준비가 안 돼서…"라며 재판을 헛바퀴 돌게 하는 경우가 반복되면, 정당한 방어권 행사의 선을 넘는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형사사건의 피고인은 막강한 국가 형벌권 앞에 맨몸으로 홀로 선 사람이다. 따라서 피고인이 누구든 그 옆에는 힘껏 같이 싸워주는 변호인이 필요하다. 기소, 변론, 증거에 따른 판단이라는 '정반합'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적정한 형사재판이 이뤄질 수 없다. 헌법상 보장되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변호인의 '충분한 조력'을 받을 권리를 의미한다(2009모1044 전원합의체 결정). 따라서 경제범죄의 피고인이 '충분한 조력'을 받으려고 사선 변호인을 선임하는 것, 흉악범이라도 '심신미약' 등 할 수 있는 모든 법률적 주장을 해보려는 것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으려고 한다.

'악인의 옆에 선 변호인'은 법치주의의 자연스런 풍경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피고인에 대한 비난과는 별개로, 그 옆에 선 변호인을 윤리적으로 탓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어떤 대선 후보의 과거 변호인 경력을 흠잡는 시각이 확산되어가는 모습을 본다. "살인범을 어떻게 태연히 변호할 수 있느냐"는 손가락질은, 해당 후보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를 넘어, 자칫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헌법상 권리까지 오염시킬 것 같아 우려스럽다.


차기현 판사 (광주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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