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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프라이데이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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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던 집을 정리하고 해외로 유학을 오게 되면서 많은 짐을 비웠다. 틈나는 대로 중고거래 앱에 글을 올렸고 여러 단체에 물건을 기증했다. 특별히 아끼던 물건들은 지인들을 물색하여 나눠주거나 맡겼다. 그래도 십수 년을 이고 지고 지내온 물건들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고, 결국 이삿날 대형 쓰레기봉투 몇 개를 가득 채우고서야 끝이 났다.


그렇게 한 번 진절머리 나게 비우고 나니 미국에 와서도 한동안 새로운 물건을 사들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시 한국에 돌아갈 때 또 그 난리 법석을 치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숟가락으로 맥주병을 하도 따서 손등이 붓고 나서야 병따개를 샀고, 가끔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올 때면 부족한 의자 대신 여행용 가방을 꺼냈다. 소로우의 오두막처럼 의자가 세 개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나름대로 '간소하고 결핍된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랬던 내가 최근 들어서는 쇼핑 전단지를 탐독하는 버릇이 생겼다. 드디어 미국의 가장 큰 쇼핑 대목인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가 다가온 것이다. 블랙 프라이데이는 추수감사절(11월 네번째 목요일) 다음 날인 금요일에 재고 떨이를 한 것에서 유래하였다는데, 현대 '소비사회'에서는 거의 11월 내내 블랙 프라이데이를 위시한 할인 행사가 진행되는 것 같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각종 프로모션과 쇼핑 후일담에 나도 뭔가 '득템'해서 '현명한 소비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모락모락 자라난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뭘 사들이는 것이 꺼려져 괜히 남편을 부추겨 보기도 한다. "TV 하나 살까?", "무선 청소기가 있으면 편하겠지?", "캐시미어 코트 하나 필요하지 않아?"…. 그러나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고통스럽게 비워야 했던 그는 호락호락 넘어오는 법이 없다.

그렇게 며칠째 '뭐든 살 궁리'에 골몰하다 보니 문득 헛웃음이 나온다. 나는 이미 필요 이상의 것을 가지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소비하고 있구나. 적어도 나에게 블랙 프라이데이는 알뜰한 소비가 아니라 습관적인 남들과의 비교로 발현된 포모(FOMO) 증후군의 양태였다. 과연 나는 '득템'을 할 수 있을까.


최윤아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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