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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증거법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한국의 소송실무를 보면, 재판당사자들이 관련 증거를 별다른 제약 없이 법원에 제출한다. 당해 사건에서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법률상의 제약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비록 상대방 당사자가 소지하고 있는 증거를 강제로 현출시키는 수단은 현저히 제한되어 있지만, 자신이 소지하는 증거자료들은, 심하게 말하면 무제한으로 법원에 제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계쟁액이 큰 사건,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 등에서는 종종 엄청난 양의 증거가 제출되어, 법원이 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 실무상 민사소송에서의 증거 제출은 진정성립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아주 약간 제약받을 뿐이고, 형사소송에서의 증거 제한은 민사소송보다는 조금 많지만 실무상 주로 문제되는 것은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 전문증거 배제법칙 정도일 뿐이다.

 

그래서 민사소송에서도 상대방의 채무불이행을 증명해야 하는 당사자는, 그 상대방 당사자가 평소에 거래상 약속을 잘 어기는 사람이라는 증거를 끼워넣기도 하고, 특히 형사소송에서 증거로 제출되는 수사기록 중에는 피고인이 어떤 나쁜 품성의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주변 정황들이 종종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성격증거(character evidence)'라고 불리는 이 같은 증거들은 판단자의 판단을 왜곡시킬 수 있으므로 원칙적으로 배제되어야 함을, 현대의 많은 심리학 연구들은 보여주고 있다.

 

또한 증인신문 실무를 보면, 증인의 신빙성의 탄핵이라는 반대신문의 본래 취지는 종종 몰각된다. 반대신문자가 직접 어떤 사실을 증명하려 하기도 한다. 그리고 반대신문 질문에 대한 증인의 긍정 또는 부정의 답변을 받아야 그 증인의 모순진술을 밝혀낼 수 있는데도, 증인은 동문서답을 하고, 이에 대해 재판장은 당해 질문에 대응하는 답변을 하라는 통제를 하지 않고 내버려 둠으로써 제대로 반대신문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 많다.

 
우리는 흔히 미국의 세밀한 증거법, 특히 증거능력에 관련한 복잡한 조항들은 한국과 상관없는 것이라고 치부하면서, 그런 증거법 규정들은 배심재판을 하는 미국에서 증거가치를 잘 판단하지 못하는 일반인 배심원들에게 직접 제시되는 증거의 범위를 통제하기 위한 것일 뿐이며, 높은 지적 수준을 가지고 있고 훈련된 법률전문가인 법관들 스스로 증거가치를 판단하는 한국에서는 법관에게 모두 맡겨두면 된다는 식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지는 의문이다. 한국의 법관들이 법률이론의 지식의 면에서 일반인과 비교될 수 없는 것은 맞지만, 법관이라고 해서 성격증거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을 듯하다.

 
한국의 대법원이 재판절차 개선에 관해서 많은 노력을 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증거법의 세밀화와 실질적 가치 있는 증인신문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개선점이 있다. 보다 살아있는 재판, 실질적인 재판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한국보다 선진적인 소송절차를 운영하는 미국, 영국, 독일의 증거법 관련 검토가 필요하며, 이 검토는 단지 법조문의 검토에 그칠 것이 아니라, 여러 심리학·사회학적 연구성과에 대한 검토를 포함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런 검토 및 연구의 결과를 증거절차실무와 연결시키는 작업이 요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