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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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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국에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는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수업 중 토론 시간에는 미묘한 중도적 입장을 표현하기 어려워 극단을 자처하게 되고, 나처럼 유학 온 친구에게 어설픈 농담을 건넸다가 의도와 달리 분위기가 싸해진 적도 수차례다. 한국에선 내로라하는 수다쟁이였던 나는 이곳에선 어느새 '고개 끄덕이기'와 '박수치기'를 가장 잘하는 경청의 아이콘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여행을 하다가 서툰 언어 탓에 우스운 일을 겪었다. 남편이 호텔 체크아웃을 하는 동안 내가 커피를 사두기로 했는데, 메뉴판에 써있는 커피 종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카페 직원은 캘리포니아 사람답게 여행은 어떠냐며 친근한 인사를 곁들였지만, 대화가 길어지는 게 부담스러웠던 나는 대충 제일 아래 써있는 메뉴를 가리키며 급히 주문을 마쳤다. 사람 이름이 붙어있는 라떼였는데, 여기 바리스타 이름인가 싶었다. 그리고 커피를 받아 한입 마시려는 순간, 코 끝을 톡 쏘는 알코올 향을 먼저 들이키며 깨달았다. 아, 그 '제임슨'이 그 '제임슨'이었구나! 처음으로 제임슨 위스키가 들어간 라떼를 맛본 날이었다.(한입 뿐이었지만 맛은 좋았다. 운전하면서 마시기에 적절하지 않았을 뿐.)

이 황당한 실수는 'Jameson Latte'가 뭔지 미처 알지 못했던 탓이지만, 한국에서라면 분명 "어떤 커피가 맛있냐", "이건 뭐냐, 저건 뭐냐" 조잘조잘 물어봤을 나다. 결국 언어의 장벽이, 아니 정확히는 그 앞에서 늘 주춤하는 나의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또 헤매게 한 셈이다. 코스트코에서 발견한 제임슨 위스키 한 병을 끌어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한 구절을 절절하게 떠올려 본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언어는 그저 언어일 뿐이고, 우리는 언어 이상도 언어 이하도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 그리고 우리는―적어도 나는―늘 그러한 순간을 꿈꾸며 살아간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하고." -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중에서.


최윤아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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