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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검사 공판실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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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이라는 이름은 거대한 건물, 혹은 묵직한 명패의 이미지를 환기한다. 그러나 특검은 거기 있지 않다. 나무에 새겨진 이름이나 콘크리트 벽 너머,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 특검이 있다. 수사기간이 종료되면 세간의 관심은 식고, 북적거리던 파견 인원들도 돌아간다. 그러나 특검의 일은 이제부터다. 수사한 결과를 모아 증거를 정리하고 법리를 구성하여 판결을 이끌어내어야 한다. 특검 사건의 특성상 자료는 방대하고, 상대 변호인단은 막강하며, 여론도 대부분 호의적이지 않다. 그러나 어쨌든 누군가는 이 외롭고 고단한 작업을 해야만 한다. 이들의 이름은 공판실 사람들이다.


특검 공판실은 주로 변호사들로 구성되지만, 이들의 일은 드라마 속 멋진 변호사와 거리가 멀다. 로펌에서의 분업화된 시스템은 기대할 수 없다. 수사기간에는 직접 체포·압수수색 현장에 출동하고 통신·거래내역을 조사하며, 공판 단계에서는 증인신문부터 최종 PT나 의견서 작성까지 모든 작업을 도맡게 된다.

대한민국 13번째 특검의 공판실은 조금 더 특별했다. 실장이 된 후, 나는 공판실을 2~3년차 젊은 변호사들로 채웠다. 댓글조작 사건의 특성상 디지털 증거를 다루는 능력과 방대한 데이터를 물고 늘어질 끈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경력이나 시험 성적은 묻지 않았다. 공판실 변호사 여섯의 경력을 죄다 합쳐도 20년 남짓. 반면 피고인 측 변호인단은 한분 한분이 20~30년 경력의 대선배들로 가득했다. 숫자부터 압도적이어서, 공판실 사람 수보다 변호인단 로펌 수가 더 많을 지경이었다. 김앤장부터 태평양, LKB, KCL…, 기라성 같은 명문 로펌들이 연합한 변호인단을 사람들은 '드림팀'으로 불렀다.

그러나 '풋내기 공판실'은 밀리지 않았다. 수십 명의 증인들을 한 주에 세 번씩 신문하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냈다. 통상의 사건과 달리 하루종일 진행되는 증인신문을 준비하기 위해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기록, 수십 테라바이트 단위의 수사자료를 밤새 조사했다. 종이 기록을 넘기는 시간도 아까워, 프로그래머 출신 김지원(36·변호사시험 5회) 변호사가 기록을 전자 DB화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썼다. 공판실 변호사들이 직접 포렌식 기술을 배워 데이터를 뒤진 것은 유명한 이야기. 수사가 끝나고 공판에 들어가면 증거를 더 수색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특검 공판실은 공판 단계에서만 300개가 넘는 추가증거를 찾아냈다. 젊은 변호사들이 찾아낸 증거들은 결정적이었다. 수사 당시 피고인은 휴대폰을 잃어버렸다며 제출하지 않았지만, 2심에서 합류한 장영주(34·변시 5회) 변호사가 "아이폰을 썼으니 데이터가 다른 애플 기기에 동기화되었을 수 있다"며 피고인의 아이패드를 샅샅이 뒤진 끝에 드루킹 관련 메모를 찾아내는 개가를 올렸다.

유명한 '닭갈비 알리바이'도 공판실 커피 테이블에서 실마리가 풀렸다. 피고인이 닭갈비를 먹느라 늦게 브리핑을 시작해서, 킹크랩이 작동된 오후 8시에는 아직 브리핑 중이었을 거라는 시나리오. 워낙 '닭갈비'가 유명해진 탓에 가끔 공판실 수다의 대상이 되곤 했다. 내기에 져서 커피를 사러 간 실원들을 기다리던 중, 누군가의 입에서 엉뚱한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그런데, 드루킹이랑 둘이 킹크랩 보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뭐 했을까요?"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조연들'의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마침 수사 당시 확보해둔 네이버 전체 로그가 남아 있었다. 킹크랩 시연 로그가 찍힌 오후 8시경이 쟁점이었다. 피고인의 주장대로 이때 고위급 회원들과 브리핑 중이었다면 회원들이 피고인 면전에서 딴짓을 할 리는 없었을 터. 반면 드루킹의 주장대로 회원들을 내보내고 단둘이 킹크랩 시연을 치렀다면, 회원들은 밖에서 기다리며 휴대폰을 만졌을 공산이 컸다. 만약 그랬다면, 그 중 누군가는 네이버에도 접속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회원들 ID로 로그 전체에 검색을 걸었다. 워낙 방대한 로그였기에 검색도 오래 걸렸다. 장난처럼 시작한 일을 모두가 잊고 있었던 저녁 즈음, 탄성이 터졌다. "있어요, 두 명! 8시!" 정확히 킹크랩이 시연되던 시간대에, 회원들이 휴대폰으로 네이버 댓글작업을 시작한 로그가 줄줄이 찍혀 나왔다. 이 로그는 특검의 1298번째 증거로 제출되었고, 재판부는 이를 인용하며 '닭갈비 알리바이'를 일축했다.

IT전문가로 성장한 공판실 변호사들의 활약은 마무리까지 빛났다. 항소심 마지막 기일, 재판부는 킹크랩 시연을 재현하기로 결정했다. 피고인 측이 제작한 영상이 공판실에 전달된 것은 공판 전날 오후. 유심히 영상을 관찰하던 김지원 변호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화면이 실제 네이버 로그와 맞지 않는다는 것. 로그를 한 줄씩 맞춰보니 피고인 측 영상에는 실제 킹크랩의 동작 중 몇 단계가 생략되어 있었다. 결국 공판실은 밤을 새워서라도 로그기록과 정확히 일치하는 영상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때가 이미 오후 8시경. 영상 작업이란 걸 처음 해보는 변호사들이 구글과 유튜브를 뒤져가며 밤새운 끝에, 동틀 무렵에야 영상이 완성되었다. 공판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모두 토끼눈으로 나선 마지막 공판. 재판부는 특검과 피고인 측 영상이 다른 이유를 물었다. 김지원 변호사가 네이버 로그와 영상을 초 단위로 짚어가며 설명했고, 하상민 분석관은 관련 소스코드를 공판정 스크린에 띄웠다. 재판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3년을 끌어온 댓글조작 사건의 공판은 이 장면을 마지막으로 종결되었다.

특별검사는 보통 공판에 직접 나가지 않는다. 공판기일 아침, 다녀오겠다는 나에게 넉넉한 미소를 보이는 것이 전부다. 법원으로 향하며, 풋내기 공판실장을 보내놓고 특검님은 방에 앉아 어떤 생각일지 가끔 궁금했던 적이 있다.

그것이 나와 같은 마음이었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가 공판정에 나설 때 조금도 불안하지 않았던 것처럼. 밤을 새운 실원들의 충혈된 눈을 보면서, 항상 누군가 등 뒤에 있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처럼. 그리하여 언젠가, 돌아보지 않아도 좋은 순간이 오는 것처럼. 그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이 자리잡는 방식이다.

이번 특검이 밝혀낸 댓글조작 사건은 모두 판결로 확정되었다. '역대 최약체'로 출발해서, '가장 성공한 특검'으로 마친 셈이다. 그 뒤에는 수년간 묵묵히 할 일을 해온 이들이 있었다. 변변한 송별회 한번 해보지 못하고 헤어지면서도, 그들은 아무런 공치사를 하지 않았다. 단지 "매일 보던 분들인데, 그리워질 거예요"하며 웃었다. 나는 이제 그 말이 사실임을 안다.

수고하셨습니다. 잘 해주셨습니다. 방대한 로그 전체를 분석해낸 특검의 해결사 김지원 부실장님, 수천 개의 증거자료들을 완벽하게 정리해준 정수진(39·변시 7회) 변호사님, 아무리 어려운 업무를 드려도 웃으며 맡아주던 분위기메이커 장영주 변호사님, 특검 최강의 공격수 이준혁(34·변시 7회) 변호사님, 늦게 합류했음에도 정치한 논리 전개로 법리판단을 뒤집어낸 노은호(34·변시 6회) 변호사님, 문돌이들의 온갖 질문과 요청에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온갖 IT 업무를 처리해준 하상민 분석관님. 여러분 덕분에 대한민국 13번째 특검은 해야 할 일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받게 될 찬사들 중, 이것이 가장 작은 것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언 변호사 (드루킹 특검 공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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