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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청년시대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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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세간의 화제는 단연 엠넷의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다. 춤이라곤 ‘1도 관심없던’ 사람들이 출연한 댄서들의 영상을 찾아보고, 허니제이와 리헤이의 배틀 장면에 펑펑 울었다는 간증이 게시판을 도배한다.


스우파의 성공은 스트릿 문화, 그 중에서도 배틀 문화가 이제 대중예술의 한 양식으로 공고히 자리잡았음을 알리는 신호다. 슈퍼스타K, 댄싱9 등으로 이어지는 경연 프로를 거쳐, 쇼미더머니로 본격적인 배틀의 맛을 본 관객들은 이미 배틀에 열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스트릿 문화의 음악, 춤, 패션, 애티튜드, 그 모든 요소들이 한데 엉켜 폭발하는 현장을 엠넷이 정확한 시기에, 정확한 방식으로 제공한 셈이다.

그런데 스우파에는 기존 스트릿 씬의 배틀과 조금 다른 방식의 배틀이 존재한다. 바로 ‘약자 지목 배틀’. 댄서가 직접 상대방을 지목하는 배틀이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자신이 이길 만한 약자를 지목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돌 출신의 이채연이 집중적으로 지목당했다. 프로 댄서도 아니고, 배틀 경험이 많지도 않은지라 속수무책으로 4연패. 모든 댄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네 번 불려나가 네 번 패배를 당한 셈이다. 급기야 채연은 대기실에서 눈물을 쏟았다. 이쯤이면 어지간한 댄서는 무대를 포기할 상황. 실제 스트릿 배틀에서도 무브를 중단하거나 아예 포기하는 경우는 심심치 않게 나온다. 처음에는 아이돌이 댄서 씬에 ‘끼어든’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기던 댄서들도 채연의 패배가 반복되면서 걱정어린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새내기 댄서는 계속해서 무대에 올랐다. 약자로 지목받고, 패배 콜을 당하면서도 상대방과 마주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기권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제작진에게 그녀는 ‘그러면 진짜 약한 거니까’라고 답했다.

채연이 속한 크루의 리더 효진은 홀로 무대에 오르는 채연의 뒷모습에 가슴아파하면서도,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응원뿐이라고 되뇌었다. 채연 역시, 대신 올라가 줄까 묻는 동료의 걱정에 그건 안 된다고 답하며 무대로 향했다. 상대방과 마주서 있는 한 아직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이길 수 있는 한 결코 약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녀들은 알고 있었다.

결국 다섯 번째로 그녀를 지목한 댄서 타로와의 배틀에서, 채연은 첫 승리를 거둔다. 승리의 순간 스물한 살 댄서는 얼굴을 감싸쥐었고, 배틀 내내 무대 사이드까지 올라와 응원하던 리더 효진은 곧장 무대로 뛰어들어 그녀를 끌어안았다.

댄서들에게 배틀을 물어보면, 항상 ‘붙어봐야 안다’고 답한다. 아무리 커리어가 앞서고 경험이 많아도 그날의 음악, 플로어 상태, 관객들의 분위기, 댄서의 컨디션, 저지들의 성향에 따라 누구든 이길 수 있는 것이 배틀이므로. 실제 댄서로서 타로의 스킬은 채연의 그것을 평균적으로 상회할 것이다. 그러나 다섯 번째 배틀에 서는 댄서의 결기, 그 과정을 내내 지켜본 저지와 관객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뒤엉켜 한 순간 터져나왔던 것이다. 그것은 스트릿만이 갖는 현장성의 마력이다. 매일 삶의 무대에서 지쳐 돌아오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내일 아침을 마주하는 이들이 스우파의 댄서들에게 보내는 뜨거운 지지는 어쩌면 그들 스스로에 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언 변호사 (서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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