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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납득할 수 없는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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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이 낸 의견서를 본다.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없고 자신은 정말 억울하다고 한다. 이런 사건이 있으면 법정에서 본격적으로 사연을 들어보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법대에 오른다.


그렇지만 가끔씩은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변호인과 상의해서 죄책을 모두 인정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꾼 경우다. 열에 여덟, 아홉은 증거관계를 살핀 변호인이 적절한 조언을 해서 마음을 고쳐먹은 것이지만, 드물게는 판사가 보기에도 '전략적 자백'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피고인에게 말을 시켜보면 안다. "자백한다"고는 했지만, 억울해서 못 살겠다는 표정과 말투다. '괘씸죄에 걸리면 어쩌지'라는 인간적인 고뇌는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양형이유에 그와 같은 문구를 쓰는 것을 극도로 피하고자 하지만, 형사판결을 검색하다 보면 종종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납득할 수 없는 변명으로 일관한다"고 꾸짖는 내용도 보인다. 피고인과 변호인 입장에서는 '전략적 자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개전의 정' 차원에서 양형에 반영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견해도 있다. 그렇지만 '자백'과 '부인'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동시에 나올 수가 없다. 자백을 유리한 양형 요소로 반영하는 것 자체가 결과적으로 부인에 페널티를 주는 것이 되고 만다.

'범행을 부인하는 태도'를 나쁘게 보고 양형에 반영하기 시작하면, 대개는 심약하기 마련인 피고인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결과가 될 수밖에 없다. 대법원도 이 점을 염려해 '진실의 발견을 적극적으로 숨기거나 법원을 오도하려는 시도에 기인한 경우'에만 가중적 양형 요소로 참작할 수 있다고 한다(2001도192 판결 등).

증거를 모두 살펴보고 '납득할 수 없는 변명'이라고 여겨지면 그냥 유죄 판결을 하면 될 일이다. '전략적 자백'을 선택하는 피고인 중에는 정말 억울한 사람이 섞여 있을 수 있다. 형사법원의 가장 큰 실패는 결백한 사람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법정에서만큼은 피고인에게 '납득할 수 없는 변명'을 할 자유를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


차기현 판사 (광주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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