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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과 천 원짜리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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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황동혁 감독)이 화제다. 오징어 게임의 주관자는 수퍼리치들의 재미를 위해 사회에서 좌절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외딴 섬의 어떤 시설로 데려가 목숨을 건 게임을 시키고, 살아남은 승자가 모든 상금을 차지하도록 한다.


극중 프론트맨(이병헌 분)은 게임 참가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세계에서 여러분 모두는 평등한 존재이며 어떠한 차별도 없이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456명의 참가자들에게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더라도 각자가 가진 개인적 조건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게임 과정이 공정할 수 없고 결과 역시 정의롭지 않다. 그래도 게임은 진행되고 승패가 갈린다.

프론트맨의 대사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제11조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법 앞의 평등'은 궁극적으로 '법정에서의 평등'(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4조)으로 구체화된다. 법정에서는 공방(공격과 방어)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 판결이 내려진다. 그런데 법정 밖의 불평등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그대로 가지고 공방을 한다면 그 과정과 결과가 공정하고 정의로울까?

법정에서의 평등이 오징어 게임에서와 같은 공허한 평등이 되지 않으려면 당사자의 부족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향상시켜 대등한 공방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국선변호와 법률구조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경제력과 사건규모의 차이가 있어서 단순한 금액 비교는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올해 1인당 국선변호 예산만 보면 미국 뉴욕시는 4만 원 정도인데(3500억 원/820만 명), 우리나라는 천 원 정도에 불과하다(615억 원/5180만 명).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미국 국선변호 정책의 기본목표가 '국선변호인과 검사가 법정에서 실질적으로 대등하게 공방할 수 있도록 대등한 인적·물적 기반을 마련해 줘야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사회·경제적 조건이 평등하지 않아도 일단 법정에 들어와서는 대등한 공방을 벌일 수 있다면 그 결과는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법정에서의 평등을 이루는 것은 법 앞의 평등을 보장해야할 국가가 그에 합당한 예산을 들여서 마땅히 할 일이다.


정준영 부장판사(서울고법)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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