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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ento M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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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사가 하는 많은 일 중에 상속등기가 있다. 여기에는 상속인의 범위를 소명하기 위해 피상속인의 '제적등본'을 첨부한다. 제적된 호적이란 뜻의 이 장부는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됨에 따라 시행된 가족관계등록법에 의해 2008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당시 호적에 기재되었던 사항은 가족관계등록부로 이관하고 기존의 호적부는 제적부라는 명칭으로 보존하면서 상속등기에 필요한 서면으로 여전히 살아 있게 되었다. 가족관계증명서와 달리 제적등본은 호주를 중심으로 한 모든 구성원의 출생과 사망, 혼인과 이혼, 입양과 분가 등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담고 있으며, 그 기록은 일제 강점기의 창씨개명이나 당시 일왕의 연호가 적혀 있는 것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이런 오래된 기록들은 날려쓴 한자로 기재되어 있어서 이를 해독하는 데 애를 먹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저 지난한 일들일 뿐, 여기에 기재된 내용은 내게 아무런 감흥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내 일가의 상속등기를 처리할 때는 완전히 이야기가 달라진다. 거기에 기재된 모든 사람의 얼굴과 함께, 잊었던 추억들이 떠올라서 눈시울은 붉어지고 가슴에선 뜨거운 것이 자꾸만 올라와서 한동안 애먼 기록만 앞뒤로 뒤적이게 된다. 여기에는 우리 가족의 내밀한 역사와 가슴 아픈 기억이 짧고 건조한 문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어린 나이에 사고로 죽은 어린아이에 대한 기록, 해방 직후에 괴질로 돌아가신 내 할아버지에 대한 기록, 꿈에라도 한번 보고 싶은 내 외조모에 대한 기록과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이들의 이름을 보고 있자면 '사람의 일생이 얼마나 짧고 덧없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생각은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다가올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몇 개의 장례식에 이르게 되고, 그러면 이제까지 나를 짓누르고 있던 걱정들이 하찮게 여겨지게 된다. 라틴어 경구에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이 있다. 또 누군가는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삶이 녹스는 것을 두려워하라"고 했다. 바쁜 일상에 치여서 삶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고 무의미한 일상을 반복할 때 가끔 자신의 제적등본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그 또한 삶의 녹을 닦는 방법이 아닐까?



이재욱 법무사(서울중앙법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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