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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삶의 마지막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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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것만큼 분명한 진리도 없다. 죽음의 그림자는 낯설지만 그로부터 영원히 도망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나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의사로부터 시한을 선고받는 소수의 사람과 끝을 알지 못한 채 시한을 사는 다수의 사람으로 나뉠 뿐.


종래 우리나라에서는 죽음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시되어 왔다. 그러다보니 죽음(엄밀하게는 마지막 생)에 대한 이해와 준비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목숨을 끝까지 붙잡아놓는 기술만 배웠을 뿐, 삶의 끝자락을 고결하게 이끌 지혜와 방법을 배우지 못하였다. 살려고 찾아가는 병원은 많지만, 존귀한 삶의 마무리를 위하여 준비된 장소는 많지 않다.

차가운 중환자실에서 온갖 연명장치를 주렁주렁 단 채 임종하는 일은 이제 흔하다. 인공호흡장치를 달면서 투여한 진정제로 인하여, 작별인사도 못 나눈 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운 상황도 드물지 않다. 의사는 책임과 비난을 회피하려 가능성이 없는 보여주기용 CPR(자조적 표현으로 '쇼피알')을 실시하여 신체손상이 발생하고, 그로 인하여 유족들은 더 큰 슬픔에 빠지기도 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 최소한의 존엄을 지켜내기 위한 첫 단계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이다. 이를 뒷받침 하는 '연명의료결정법(소위 존엄사법)'이 2018년 2월 시행된 지 3년 6개월 만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건수가 100만을 넘었다는 소식이다. 생의 너머에 이르는 무겁고도 험난한 길을 규율하는 법답게 30음절의 긴 제목을 단 법률('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100만이라는 숫자가 어마어마한 것 같지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연명의료중단결정이 포함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 등록할 수 있으니 그리 대단한 숫자도 아니다. 물론 60세 이상은 되어야 연명치료에 관심을 가지겠지만, 고령인구에 대비해 보더라도 많지는 않다. 아직 의료현장에서는 미리 준비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아니라, 임종에 임박하여 환자가 평소 가졌던 의사를 추정하거나 가족들의 합의로 연명의료중단결정이 이루어지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내 삶의 마지막 선택을 가족에게 맡길 때, 그들은 얼마나 당혹스럽고 고통스러울까. 연명치료가 오히려 삶을 정리할 시간을 줄인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연명의료에 대하여 미리미리 고민하는 일은 어떤 결론에 이르든,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남은 삶을 재정립하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존귀한 영혼을 지닌 인간은 육체치료에만 집중하는 의사에게 삶과 죽음의 결정권을 전적으로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홍기태 원장 (사법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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