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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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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최악의 테러'가 뉴욕 한복판에서 일어난 지도 벌써 20년이 되었다. 강산이 두 번은 변했을 세월이지만 여전히 많은 미국인들은 그날의 상처와 교훈을 되새기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올해는 9·11 테러 20주년을 맞아 미국 전역에서 추모의 열기가 뜨겁다. TV와 라디오에서는 추모행사와 유족 인터뷰가 연일 방영되고, OTT 플랫폼에서도 관련 다큐멘터리와 영화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요즘 미국 넷플릭스 인기 콘텐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영화 '워스(Worth)'도 9·11 테러에 대한 것이다. 영화는 실제 9·11 테러 직후 조성된 피해자 보상기금의 특별 위원장이었던 변호사 켄(Kenneth Feinberg)의 실화를 바탕으로, 켄이 소송전을 막기 위해 정해진 기간 내에 보상기금에 대한 피해자 80%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겪는 고뇌와 성장을 보여준다.

켄은 희생자의 나이와 수입, 피부양자 수 등에 기초하여 보상금 지급 공식을 만들고 유족들을 설득하지만, 유족들은 보상기금의 접근 방식에 대해서부터 의문을 제기하며 거세게 반발한다. 다소 세속적이고 냉철한 변호사 켄은 유족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여러 갈등을 겪지만, 공식으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희생자들 각각의 서사를 대면하게 되면서 점차 유족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영화의 원제는 실제 인물인 켄이 2005년에 출간한 회고록의 제목을 그대로 딴 '생명의 가치란 무엇인가?(What is Life Worth?)'이다. 영화 초반 로스쿨 학생들에게 "법적으로 봤을 때는" 생명의 가치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숫자로 답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강의하던 켄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스스로 만든 보상금 지급 공식에 대해서도 회의를 느끼며 괴로워하지만, 결국은 숫자로 답해야만 하는 법률가의 소명 역시 묵묵히 받아들인다.

보상금 지급 공식처럼 적나라하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수시로 생명의 가치를 메기고 저울질하며 살아간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공습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인하여 20년간 희생된 민간인은 약 4만 7천여 명이라고 한다. 9·11 테러 20주년에 미국 유학생활에서 마주한 여러 숫자들 앞에서 내가 가진 저울도 한 번 되돌아본다.


최윤아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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