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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사

[추모사] 푸른 항심(恒心)의 삶을 추모합니다

- 고(故) 윤재식 대법관님 영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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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님, 아니 선배님, 모란꽃 피는 남녘 땅 고향 선배님! 이른 아침의 어스름 가운데 "운명하셨다"는 사모님의 전언 말씀을 듣는 순간, 왈칵 눈물 같은 느낌이 가슴을 치고 올라왔습니다. 오랫동안 이름도 생소한 병으로 고생하시던 모습, 그 가운데에서 얼핏 보이셨던 '무상(無常)과 고독(孤獨)', 어느 때인가 "이제는 더 오지 말게", 그 말씀 하시던 그 때 그 방은 왜 그렇게 허허하고 쓸쓸했는지? 수년은 더 선후배의 정 나눌 수 있었는데! 홀연 가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선배님을 뵌 것은 물경 45년 전쯤인 것으로 기억됩니다. 사법연수생 철없던 그 시절부터 법원을 떠나 재야의 변호사 시절까지 반세기 여 동안, 긴 인연의 끈을 이어왔습니다. 문득, '영랑(永郞)과 다산(茶山)'으로 대표되는 고향땅 강진만의 푸르름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천하제일고인으로서의 맹세, 고등학교 때 읍내 큰 나무에 새겨 두셨다는 일심(一心) 두글자, 그것은 변하지 않는 항심(恒心), 탐진강의 푸르름이었겠지요. 그 한마음으로, "오직 바른 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는 배우신 교훈 그대로, 올곧은 양심으로 법관의 길 걸어오셨습니다. 그 길 위에 신산한 산고를 겪었던 판결들이 기억 됩니다. 대체복무제 도입 필요성을 언급하신 보충의견과 여성에게도 종중회원의 자격을 인정하신 판단은 우뚝합니다. 미국의 대법관 긴스버그(Ruth B. Ginsburg)가 말했던 시대의 사조(climate of the era)를 고려한 깊은 성찰에서 오는 일관정신(一貫情神)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선배님의 판결들에는 문자 의미 이상의 법조 후배들에 대한 조언과 질책의 말씀까지 녹아 있는 듯합니다. "법관이라고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다." 저의 어설픈 판결을 보시고 하셨던 그 말씀, 지금도 뜨끔합니다. "세상에 덕을 베풀수 있던 순간마저 법의 이름으로 내쳤던 것이 과연 정의였는지?" - 모든 것을 드러내시는 솔직한 말씀까지 하셨지요. "누구에게나 뼈아픈 순간이 있으니, 그냥 잊어버리게."- 저의 법조일생에서 가장 아픈 순간에 해주셨던 말씀,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제, 불민한 후배가 기도 드립니다. 선배님, 병마와 고통이 없는 저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십시오. 인심의 조석변이나 약속을 내팽개치는 속세의 먼지 같은 일은 더 없을 것입니다. 자제분들이 병수발로 고생 많으셨던 사모님을 잘 모실 것입니다. 든든한 법원의 큰 기둥인 사위분, 법학교수인 아드님, 사랑스러운 따님들께서 이 땅의 일들을 잘 감당해 나가실 것입니다.

끝에 시인 영랑의 고향집, 그 언저리에서 문학소년의 시간을 보내신 선배님께 시 한편을 올립니다. 먼 길의 노자입니다. 선배님의 법조인생, 누가 보아도 큰 성공이었기에 이젠 모든 것 버리시고 소풍 가시듯 가시라고 드립니다. 무장무애(無障無碍)의 시인이 남겼던 한 생애의 고백,'영랑과 강진', 남도의 만가가락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기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

저 천국에서도 남도의 모란꽃은 피워 있겠지요? 강진만과 탐진강의 푸르름으로, 항심과 일심의 마음으로 다시 만나뵙고 싶습니다.


2021. 9. 13.


후배 손용근, 돈수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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