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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The Grey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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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의 중심부에 위치한 프랑스 대사관 정원에는 녹슨 철제 문이 전시되어 있다. 평범한 모습의 문이지만, 프랑수아 비조(Francois Bizot)의 'The Gate'라는 책을 통하여 유명세를 타게 되어 철거 후 전시품으로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인류학자로서 크메르 루즈 감옥에서 극적으로 생환한 비조는 크메르어와 프랑스어에 모두 능통하였기에 1975년 4월 크메르 루즈가 프랑스 대사관을 포위한 채 대사관 안에 있는 캄보디아 국적자들의 인도를 요구할 당시 중간 역할을 맡았다.


영화 킬링필드 초반부에서 미국인 기자 셴버그와 동행취재를 하던 캄보디아 기자 프란이 프랑스 대사관으로 함께 도피한 후 여권을 급히 위조하여 영국 국적자로 행세하려 하지만 결국 조악한 사진 탓에 발각되어 크메르 루즈에 인도되는 장면 역시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비조는 그 평범하기 짝이 없는 문이 여러 사람의 생사를 가르는 경계가 되어버리는 장면을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다.

최근 탈레반을 피해 카불을 필사적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의 비극적인 모습을 보면 '데쟈 뷔(Deja Vu, 旣視感)'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칼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라는 글을,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희극으로"라는 유명한 말로 시작하였다. 기괴하고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루이 나폴레옹이 삼촌 나폴레옹을 모방하여 보통선거에서 승리한 후 독재자가 되는 과정을 분석한 글이다.

이미 존재 의미를 상실한 과거의 유령을 불러내어 퇴보를 거듭하는 '혁명'의 어리석음은 식자에게는 실소의 대상일 수 있겠지만, 루이 나폴레옹이 권력을 획득하게 된 계기가 된 6월 봉기는 3천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비극이었다. 이처럼 역사에 기록된 대규모 살상의 현장에서 정작 그 희생의 대상이 된 사람들의 목소리는 쉽게 들을 수 없게 되어 버리고, 대부분 생존자의 증언이 중요한 자료로 남는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인 프리모 레비는 자신의 유서에 해당하는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라는 글을 통하여 생존자들이 누구인가를 밝힌다. 즉 수용소의 역사는 희생자와 박해자로 단순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고참 수용자들은 신입을 괴롭혔고, '특권층 포로'들은 중간지대에서 권력을 휘두르면서 관리자 역할(화장터와 시체처리 등)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였으며, 나중에는 그들이 생존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레비에 의하면, 생존을 위해서는 논리와 도덕으로 현실을 이해해 보려는 지식인의 교양은 방해가 되었고, 자신의 일에만 몰두할 수 있는 과학자나 기술자의 태도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레비 역시 실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화학자였기에 수 차례의 위기를 넘기고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캄보디아의 툴슬랭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남은 극소수의 사람들 또한 재봉틀, 자전거, 타자기, 사진기 등에 대한 실용적 기술을 가졌던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역사는 우연과 복합성으로 가득차 있고, 그 안의 인간들 역시 명확하게 분류되지 않는 회색적 존재들이 대부분이다. 승자와 패자, 선인과 악인, 피해자와 가해자, 더 나아가 우리와 남으로 집단화, 단순화시켜 파악하려는 태도는 일면 자연스럽거나 불가피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러한 가설은 개인이 처한 구체적 사정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공감을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 유사한 구조에 의존하는 법률적 판단, 예를 들면 난민 심사와 같은 영역에 있어서도 이러한 접근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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