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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자, 이제 노래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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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책 제목이 멋있어서 읽은 책이 있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책으로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저자는 철학을 배워서 얻는 가장 큰 소득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깊이 있게 통찰하고 해석하는 데 필요한 열쇠를 얻게 해 준다는 점이라고 한다.


한 때 나는 법률 지식이 삶의 무기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법을 알면 어떤 사건 사고를 당하더라도 이를 헤쳐 나갈 방법을 보다 수월하게 찾을 수 있으므로 매우 유용하고 도움이 되는 도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법률 지식이 '생활'의 무기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법의 해석자 또는 판단자로서 자신의 철학이 없다면 '삶'의 무기까지는 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악기를 배울 때 새로운 곡을 연습하게 되면 우선 악보를 읽고 선율을 익히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 후 곡을 능숙하게 연주하게 되는 어느 시점에 늘 선생님께서 "자, 이제 노래해 봐"라고 말씀하시는 순간이 온다. '노래?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하지? 나는 지금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데….' 이것이 통상 초심자의 생각이다. 나도 그랬다. 어찌 되었건 선생님의 가르침에 부응해서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조금 더 부드럽게 연주해 보기로 한다. "노래하라"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나만의 깨달음을 얻은 때는 청소년기를 훨씬 지나 악기를 이미 그만둔 시점이었다. 곡을 기술적으로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으니 이제 이 곡에서 느끼는 나만의 감정을 악기에 실어 노래하듯 연주하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지난 1학기가 끝나갈 무렵 법철학회로부터 설문조사 메일을 받았다. 많은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이 변호사시험 준비에 부담을 느끼다보니 기초법학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안을 모색하고자 진행하는 설문조사였다. 악기든 법이든 기술적인 부분은 연습을 통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는 것이 가능하다. 처음에는 기술(technic) 또는 지식을 연마하기에 바쁜 나머지 그 이외의 것까지 신경을 쓰는 것이 힘들고 귀찮기만 하다. 그런데 그 기술이 몸에 익고 '자신의 노래'를 불러야 하는 시점이 왔을 때 오로지 기술(지식) 습득에만 몰두한 자는 '자신의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방황하게 된다.

교양과 철학이 반드시 학교 강의를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학생 시절 배웠던 기초는 머리에 심은 씨앗과 같다. 실제 현장에 나가 필요한 경우에 우리는 그 씨앗에 물을 주고 싹을 틔워 나무로 자라게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씨앗이 없다면 그 기초를 닦기 위해서 사회인으로서 오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코로나 대유행 이후 네 번째 학기를 맞이하면서 학교라는 배움 공동체의 형태와 의미가 무엇인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학 교육의 올바른 길은 무엇인지 고민이 깊어진다.


정소민 교수 (한양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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